소음이 난무하는 시대 / 천세진
2024년 05월 23일(목) 19:38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알랭 코르뱅(1936∼, 프랑스 역사학자)은 『침묵의 예술』에서 이렇게 썼다. “장소의 내밀함, 집은 물론이고 방과 방안 사물들의 아늑함은 침묵으로 짜여있다. 18세기 들어 감수성이 예민해지면서 숭고미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들은 사막의 헤아릴 수 없는 침묵을 감상했고 산과 바다, 들판의 침묵에 귀 기울였다.”

여전히 방은 존재하고 사물들도 방안에 가득하고, 망가지기는 했지만 산, 바다, 들판, 사막도 어딘가에 아직은 존재하지만 18세기의 감수성과 침묵의 아늑함은 지구에서 사라졌다. 침묵의 아늑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소란스러움이 있다. 해가 져도 집안에서는 냉장고 소리, TV 소리가 계속 나고, 집 밖에서는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다.

예전에도 침묵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밤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침묵하지 않았고 새들이 울거나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요란했다고 말이다. 인정한다. 물리적으로 완전한 침묵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리 하나하나를 온전히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듣기 위해 동원된 것, 그것이 바로 침묵이었다.

이제는 침묵을 동원할 수 없다. 아무리 침묵을 데려다 놓아도 하나하나의 소리를 구분하여 세심하게 들을 수 없다. 너무 많은 소리가 뒤섞여 있고, 뒤섞인 소리는 새소리와 물소리의 조합이 아니다. 같은 출처를 가진 것들은 소리가 달라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지만 서로 다른 출처를 가진 소리들은 서로를 방해한다. 시공과 물질과 비물질, 자연과 인공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맥락 없이 뒤섞인 온갖 소리가 침묵과 소리 사이의 다리를 끊어 버렸다.

과연 인간의 삶에 이토록 많은 소리가 필요하기는 했을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인간은 너무 큰 무리를 이루었다. 무리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소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가 하나의 무리가 되고 말았다. 끝에서 끝까지 소리가 닿으려면 어쩔 수 없이 침묵을 깨게 되어 있다. 침묵이 태생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그런 상황인데, 삶의 부박한 소음을 제 영역에만 두지 않고 다른 곳까지 끌고 간다.

관광산업의 다른 이름은 소음 산업이다. 서로 멀리 떨어져 각자의 소리를 내던 인류의 문화 공동체들이 서로 맞닿았다. 비행기가 끊임없이 이방인들을 이방의 공간에 부려놓는다. 뒤섞이면 소리가 만들어진다. 뒤섞이면 뒤섞일수록 더 많은 소리가 만들어지고 침묵은 사라진다. 침묵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서 자라던 문화와 생명들도 끝내는 사라진다.

현대인의 삶 곳곳에서 잉여(剩餘)와 과잉이 발견된다. 인간들 스스로 자신들을 잉여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든 것은 소리를 갖고 있다. 남아도는 것이든 꼭 필요한 것이든, 사물이든 사물이 아니든,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소리를 갖고 있다. 유독 시끄러운 소리를 가진 것도 있다. 국가에서 발표한 의료 정책이 만들어낸 소리를 보라. 자연은 만들어내기 어려운 상상하기 어려운 소음이다.

변화를 이야기하고 개혁을 이야기한다. 모든 변화와 개혁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한국의 변화와 개혁에는 빠짐없이 건물을 짓는 일이 동반한다. 이전의 것들은 오로지 폐기될 존재라는 듯이 부수고 새로 짓는다. 그 과정에서 소리는 만들어진다. 변화와 개혁의 이전과 이후를 상징하는 세력들 간의 불협화음도 동반된다.

그림은 침묵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귀가 쟁쟁 울리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들조차 침묵으로 전한다. 하지만 사회적 그림은 침묵으로 의도를 전달하지 않는다. 사회적 풍경이 많아질수록 시끄러워진다. 위대한 풍경은 숭고미를 가졌지만, 도시의 풍경에 숭고미 같은 건 없다. 침묵하려 애쓰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의 침묵은 숭고미와 연결되지 않는다. 숭고미는 말문이 막히는 것이다.

욕망이 커질수록 소리도 함께 커진다. 소란스러움이 성공의 증거처럼 여겨진다. 미학은 없다. 사막에서 느끼는, 침묵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조심성은 도시에 없다. 그러고도 사막보다 더 척박한 사막을 이룬 것이 놀랍다.

한 시대의 소음과 침묵의 크기는 그 시대를 사는 인간들의 욕망의 크기다. 침묵에 다가서는 방식의 변화와 개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문명의 소음을 줄이는 방식의 변화다. 그래야만 침묵과 생명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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