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정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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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 꺾어 자동차 놀이 할 때, 각자 싣는 게 달랐다. 명근이는 텃밭 흙을, 용욱이는 마른 모래 한 고봉을, 정두는 나사와 부러진 망치 대가리를, 나는 풀꽃을 꺾어 넣고 언덕길을 달렸다. 정두는 공대를 나와 자동차 회사에 나가고, 명근이는 경운기 탕탕거리며 소를 키운다. 용욱이는 막다른 골목까지 배달 도시락을 나르고, 나는 풀벌레 소리며 눈물 그렁그렁한 시를 꿈꾼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할머니 금반지며 삼촌 주판알을 가득 채우고 부룽거릴걸. 하지만 흙탕물 채우고 소방차를 몰던 기활이는 저수지에 들어간 뒤 쉰 넘어까지 나오질 않는다. 시란 걸 쓰고 읽을 때마다 나는 행간에 구명조끼가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암소의 마른 등, 그 등짝에 기활이가 앉아 있는지를.
(시집 ‘그럴 때가 있다’, 창비, 2024)
[시의 눈]
고무신을 꺾는다는 건 신을 포갤 때 한쪽 신을 휘어서 다른 쪽 신에 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동차 모양이 되지요. 그렇게 놀던 악동들이 흑백 기억 속에 있습니다. 고무신 자동차에 흙이나 돌, 풀 들을 싣습니다. 그리곤 부릉부릉 소리 내며 끌기놀이를 하지요. 한데, 한 친구는 거기 흙탕물을 채우더니 나중 소방차를 몰았군요. 그는 홍수 때 시람 구하다 저수지에 빠져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구명조끼가 없던 게지요. 화자는 큰물 질 때 그가 혹시 암소등에라도 올라타 있는지 두리번거립니다. 그처럼 시인에게도 주의할 일이 있지요. 시의 행간 구명조끼를 두었는지 살피는 일입니다. 시가 독자를 잃고 익사할 직전 떠내려가는 암소등도 없다면 뭐 끝장이지요. 이정록 시인은 충남 홍성에서 나,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의자’(2006), ‘어머니학교’(2012),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2016)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슬픔과 고통을 담은 대상의 내면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손등으로 훔쳐낸 그 눈물을 받아 적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