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투자인가? / 김현성

2025년 03월 06일(목) 18:17

김현성 광주경제진흥상생일자리재단 대표이사

이재명 대표는 최근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투자와 그 수익을 국민과 공유하는 방안을 제안하며, 국가의 전략적 투자가 미래 기술 발전과 국민 복지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히 AI 산업 경쟁력을 넘어, 공공자본의 역할과 새로운 경제 성장 모델에 대한 논의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과연 국가가 전략산업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국민과 공유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발상일까? 대만은 1987년 TSMC를 설립할 당시 정부가 자본금의 48%를 출자했으며, 현재도 대만 국영개발기금이 최대 주주로 남아 있다. 이는 국가 주도의 투자가 민간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그 혜택을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싱가포르의 테마섹, 노르웨이의 국부펀드, 중동의 국부펀드 등도 국가 주도의 투자 모델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 역시 한국투자공사(KIC)와 국민연금을 통해 공공 자본을 운용하며, 이로 인한 수익을 국민과 공유하고 있다.

2024년 한국 경제는 수출이 전년 대비 8.2% 성장하며 겉보기에는 양호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실질임금은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고, 소상공인들의 폐업률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는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전략이 노동자와 소상공인에게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지금까지 조세 감면과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을 지원해왔지만, 이는 낙수효과를 기대한 정책으로, 현실에서는 임금 정체와 소상공인의 고통만을 초래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김영란 교수는 “낙수효과는 더 이상 현대 경제에서 유효한 개념이 아니다”라며, “기업의 이익이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분배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재분배 정책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완화와 조세 감면만으로는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공 투자의 확대와 함께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노르웨이의 국부펀드는 석유 수익을 국민 전체의 복지와 미래 세대를 위해 투자하는 모델로 유명하다. 이 펀드는 단순히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넘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원칙에 기반한 투자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 노르웨이 국민은 이 펀드의 수익을 통해 높은 복지 수준과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다. 김태형 한국투자공사(KIC) 전략기획팀장은 “모태펀드의 역할을 확대해 공공 자본을 혁신적 기업과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국부펀드와 모태펀드는 국민 전체가 부담한 재원을 통해 투자를 진행하고, 그 수익을 국민에게 환원하는 새로운 경제 성장 모델이다. 이 모델은 시장주의적이면서도 친기업적이며, 동시에 국민 경제의 성장과 민생 경제의 선순환을 도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 대응과 기술혁신 경쟁에 필요한 투자를 공공 자본으로 지원하고, 그 성과를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방식이다. 정재승 KAIST 교수는 “기후위기와 기술혁신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공 자본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며,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경제는 기후위기와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며, 기술패권 경쟁은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 전체주의, 레닌주의와 같은 색깔론으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기술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략적 투자와 민간의 혁신 역량을 결합해야 한다. 국부펀드와 모태펀드와 같은 공공 자본이 이를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른 결과를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마차를 이어 기차를 만들 수 없듯이 낙수효과에 빠져 허우적 대서는 안 된다. 파괴적 혁신의 경제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국부펀드와 모태펀드의 사례는 공공 자본이 어떻게 국민 경제와 민생 경제의 선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는 정치적 대립과 색깔론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놓고 혁신경쟁을 할 때이다. 새로운 경제 모델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대개혁과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눠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