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쏠림의 풍경학 / 천세진 |
| 2025년 03월 16일(일) 2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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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더 심한 풍경이 펼쳐진다. 땅이 스며드는 걸 용인하지 않는 형태로 변형돼 있다.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거대한 도시의 몸집에 비해 너무 작아 보이는 구멍으로 빗물이 모여 도시 밖으로 배출되도록 설계돼 있다. 설계 이상의 비가 내리면 도시는 지옥이 된다.
비와 배출을 위한 설계를 따지려는 건 아니다. 배출을 위한 구멍이 쏠림처럼 보여 <쏠림의 풍경학>쯤을 만들어보려는 것이다. 넓은 지경에서 받아들이는 일이 차단되면 쏠림이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고, 배출이 쏠림을 감당하지 못하면 여러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어떤 형태의 영역이든 그 안의 삶이 지속된다.
쏠림은 여러 형태가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지리 등 모든 영역에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본질은 거의 하나에 가깝다. 쏠림은 특정 영역을 과도하게 가동하고, 쏠림이 일어나지 않는 나머지 영역은 불용(不用)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쏠림은 압축이기도 하다. 압축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한국처럼 땅이 적은 곳에 많은 사람이 살아가려면 압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아파트 공화국이 된 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다만 그 압축이 분산되지 않고 한 지역에 집중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우린 그 문제를 만들어냈고, 전국의 시골을 불용지역으로 변화시켰다. 시골이 불용지역으로 변하는 동안 인구는 증가했다. 쏠림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문제였다.
나머지 영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지리적 불용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치는 어떤가. 두 개의 구멍만이 존재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제3, 제4, 제5의 정치적 견해를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들어갈 구멍이 존재하지 않아서 두 개의 구멍이 엄청난 파열음을 내며 정치적 견해를 피아 구분에 가깝도록 강제로 재편하여 빨아들이고 있다.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어느 영역 따질 것 없이 모든 영역이 그 지경이다. 온 나라가 서로 다른 레밍 떼가 질주하는 들판 같다. 차라리 어서 빨리 절벽이 나왔으면 싶을 정도로, 들판은 너무 시끄럽다. 쏠림은 특정 영역을 아우성 지대로 만들어버리고 다른 지역은 음이 소거된 지역으로 만들어버린다. 취향의 쏠림은 특정 식당과 가게를 번성하게 하고 나머지는 사라지게 한다.
엘리트들은 고립을 선택한다. 남들과 같은 걸 싫어한다. 우리 모두 엘리트가 되면 어떨까. 남들이 가지 않는 식당을 찾아가고, 남들과 다른 취향을 위해 다른 가게를 찾아가고, 조금 다른 정치적 이해를 갖기 위해 여러 정당이 설립되는 정치적 풍경을 만들어내면. 질주하는 권력이 해체되고, 작은 규모의 다양한 것들이 모두 살아남아서 곳곳을 풍성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쏠림은 남의 의견을 생각 없이 따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가장 큰 목소리를, 가장 밝은 빛을, 가장 강렬한 냄새를 따라간다. 따라간 곳에 언제나 정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내 취향과 의견이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해도 빈약하면 외부의 큰 소리와 빛, 냄새가 나와 맞지 않는데도 따라간다. 그곳에 가면 비슷한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추종하던 취향과 생각에 의심이 생겨도 찾아갈 곳이 없다. 이미 죽어버렸거나 굳게 닫힌 불용지역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몰려다니지 말 것을 권한다. 엘리트는 홀로 걷는다.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지 않는다. 나의 온몸과 생각이 구멍이 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숱한 구멍이 존재한다. 쏠림은 그 구멍을 막는 일이다. 하나의 구멍을 남기고 나머지를 막는다면 흡입과 배출이라는 단 하나의 용도학이 남을 뿐이다. 쓰이거나 용도 폐기, 둘 중 하나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