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 신춘우 |
| 2025년 05월 13일(화)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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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복숭아와 자두의 꽃과 열매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으며, 화려하기로 유명한 양귀비 꽃과 견줘 복숭아 꽃의 아름다움이 손색이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복숭아꽃을 복사꽃이라고 부르는데, 복숭아라는 말은 복사나무 열매를 말한다. 옛 문헌 등에 의하면 조선시대 꽃구경의 대상은 대부분 복숭아꽃이었고 다음으로 매화, 살구꽃 등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동요 중 1929년에 발표된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의 가사에 “복숭아꽃 살구꽃”이 포함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
복숭아와 관련된 일화로 조선 전기(前期)시대 화가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안견의 절대적 후원자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꿈에서 상상속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접하고 그 느낌을 안견에게 설명해 그리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안견과 안평대군의 안(安)이 겹치는 것이 두 사람 사이의 어떤 인연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이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그림과 신숙주, 박연, 김종서, 정인지 등 당대 명사들의 시와 글씨가 어우러져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경지를 구현해 조선시대 전기 문화예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무릉도원은 중국 육조(六朝)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기원한 것으로 무릉에 사는 한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계곡을 따라가다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숲을 지나 동굴을 벗어나자 아주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났다는 일화에서 유래됐는데, 동양 문화권에서 복숭아꽃들이 만발한 곳을 이상향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듯 하다.
복숭아와 관련된 또 다른 일화로는 중국 원(元)나라 말기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소개된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들 수 있다. 도원결의는 후한(後漢) 말 영제(靈帝) 시대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유주(幽州)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장비의 집 뒤뜰 복숭아 밭에서 맺은 결의에서 유래됐다.
다음으로 중국 한왕조(漢王朝) 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악부고시(樂府古詩) 군자행(君子行)에서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말아야 한다(李下不正冠)’이란 고사성어도 유명하다.
그리고 중국 신화에서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의 전설에 따르면 동방삭이 곤륜산(崑崙山)에 사는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부인인 여신(女神) 서왕모(西王母)가 한무제(漢武帝)에게 선물한 복숭아를 훔쳐 먹고 불로장생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이러한 도리(桃李)가 천하(天下)에 가득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는 복숭아와 자두는 꽃과 열매가 좋아 자연스럽게 그 나무 주위로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뜻으로 복숭아와 자두나무 아래로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는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 우수한 인재가 모여든다는 도리성행(桃李成行), 도리문전(桃李門前), 만문도리(滿門桃李) 등으로도 인용되기도 한다.
도리만천하의 유래는 자치통감(資治通鑑) 당기(唐紀)에서 비롯됐는데, 당(唐)나라 때 대신(大臣) 양문혜공(梁文惠公) 적인걸(狄仁傑)에게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상서랑(尙書郞)으로 적합한 인물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자신의 아들인 광사(光嗣)를 추천했다.
적인걸은 재상으로 재임하는 동안 공정한 판결과 청렴한 태도로 유명했으며, 많은 부패와 불공정을 바로잡아 그의 충성심과 지혜는 측천무후의 신임을 받았다.
그런 적인걸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측천무후를 비롯한 관료들의 의혹을 샀지만 아들 광사가 능력을 발휘해 오히려 큰 신임을 받게 되면서 장간지, 요숭, 환언범, 경휘, 두회정 등 적인걸이 천거한 이들이 당나라 중흥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주위에서 “천하의 인재가 모두 공의 문하에 있습니다(桃李滿天下)”라고 하면서, 도리만천하는 우수한 문하생이 많음을 비유하는 뜻으로 사용됐다.
이후에는 우수한 제자들과 뛰어난 문하의 인재를 천거하거나 후학을 교육하는 일, 우수한 제자나 후배를 많이 배출한 사람을 뜻하게 됐다.
스승의 날에 즈음해 ‘덕망이 높고 학식이 뛰어난 스승 아래에는 제자들이 구름같이 모인다’라는 도리만천하의 뜻을 다시금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