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올라가겠지…” 유가족 상처 치유는 ‘요원’ [‘학동참사’ 4주기](상)흐르고 멈춘 시간 작년 10월 철거 끝…‘17명 사상’ 흔적 無 책임자 처벌 마지막 대법원 판단 남아 추모공간 조성 ‘공사비 협의’ 발목 잡혀 영구 보존 운림54번 전시 장소도 미정 장은정 기자

2025년 06월 08일(일) 19:51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지난 2021년 6월9일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방향으로 무너져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학동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오전 사고 현장은 지난해 10월 철거가 완료돼 큰 가설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김애리 기자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시민 17명이 안전보다 이익을 쫓던 이들에 의해 죽거나 다친 학동 붕괴 참사가 9일 4주기를 맞는다. 그날로부터 1천일이 훌쩍 지나는 동안 현장의 상흔은 모두 사라졌으나, 유가족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있다. 이에 본보는 희생자와 유가족을 기리며 학동 붕괴 참사 관련 해결해야 할 과제 등을 담은 기사를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원점에 있는 것 같아요.”

학동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둔 8일 황옥철 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현재 심정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지난 2021년 6월9일 오후 4시22분께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선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방향으로 무너졌다.

건물 잔해가 이곳을 지나던 운림54번 버스를 덮치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시민 9명이 죽고 8명이 다쳤다.

비리 복마전으로 기록된 학동 붕괴 참사의 원인은 안전보다 돈을 우선시한 욕심이었다.

그 욕심에 무고한 시민이 파묻힌 그날로부터 4년이 지나는 동안 참사 현장의 상흔은 모두 지워졌다.

이날 오전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은 큰 가설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 내부 모습은 훤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울타리 사이 틈으로 보이는 부지는 깔끔했다.

철거 전 빽빽하게 들어섰던 건물들은 지난해 10월 모조리 치워져 콘크리트 조각 같은 작은 잔해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장이 수습되는 동안 수사 기관은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 다원이앤씨 관계자, 백솔건설 관계자 등 7명과 법인 3곳(현산, 백솔건설, 한솔기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입건했고 기소했다.

이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지난 2월 내려졌고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았다. 2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피고인 7명 중 실형을 살게 되는 건 2명(백솔건설 대표·징역 2년6개월, 한솔 현장소장·징역 2년) 뿐이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재개발 공사의 시공사인 현산은 사회적 책임 이행과 유가족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추모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지난해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재개발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조정 협의에 이르지 못한 탓에 좀처럼 이행되지 않고 있다.

해당 공간의 조성은 재개발 공사가 시작됐을 때 같이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유가족이 요청한 사고 버스 운림54번 영구 보존의 경우 어디에 둘 것인지 광주시와 합의점을 찾지 못해 지역 한 창고에 그저 보관만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참사로부터 4년이 지나는 동안 누구보다 큰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로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 하나 이행되지 않아 유가족들은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황옥철 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이제는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다. 현산, 광주시, 동구청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당시 사고 현장에 추모 공간을 조성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것도 정말 많이 양보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대화는 커녕 만남 자체를 피하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끝으로 황 대표는 “공사도 공사지만 그전에 먼저 조합 측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듣고 싶다”며 “똑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자 처벌과 함께 이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