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물질, 편리함과 위험 사이 줄다리기 / 오은하 |
| 2025년 07월 01일(화) 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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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발생한 메탄올 집단중독과 실명, 2022년 트리클로로메탄 사고로 인한 급성 간질환 발생,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은 화학물질이 가진 양면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생활 속 작은 선택이 얼마나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처럼 화학물질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도 하지만 동시에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이 양면성을 직시하고 생활 속에서부터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해야 한다.
생활 속 화학물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알기’다. 어떤 제품에 어떤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는지, 그 물질이 어떤 위험성을 가졌는지 알아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바로 이 ‘정보의 부재’에서 시작됐다. 제조사는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고 소비자는 위험을 알지 못한 채 매일 독성 물질을 흡입했다. 그 결과 수백명이 생명을 잃거나 평생 회복할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게 됐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치료비와 생활비 지원, 사망 및 장해 보상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피해를 완전히 복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사후 구제’보다 ‘사전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제품 구입 시 성분 표시를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생활화학제품, 세제, 방향제, 세척제 등을 구매할 때 성분과 안전성을 살피는 것은 이제 필수다. 둘째, 불필요한 화학제품 사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실천이다. 필요 이상으로 다양한 방향제, 탈취제, 소독제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화학물질 노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자연환기, 물리적 청소 등 비화학적 방법을 우선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셋째, 화학물질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경부의 ‘생활화학제품 안전정보 포털’과 같은 공신력 있는 자료를 활용해 스스로 안전성을 확인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는 것이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넷째, 위험 징후를 발견하면 바로 신고하고 조치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더 큰 규모의 대응이 필요하다. 여수산단은 전국 화학물질 취급량 1위 지역이다. 2022년 여천 NCC 폭발 사고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지역사회 전체에 충격을 줬다. 사고 원인은 안전관리 부실과 작업 절차 미준수였다. 이처럼 대형 산업재해는 개인 차원의 노력을 넘어, 국가와 기업이 법·제도적 차원에서 체계적인 관리와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화학물질 사고는 더 이상 특정 산업계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일상은 이미 다양한 화학물질과 맞닿아 있으며 그로 인한 위험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화학물질을 의심하고, 공부하고, 안전한 선택을 하는 일이 결국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개인도 이제는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생활화학제품 하나를 고를 때 ‘편리함’보다 ‘안전성’을 먼저 따지는 사회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대형 사고에만 분노하는 것을 넘어, 평소 작은 실천을 통해 위험을 줄여 나가는 생활 속 혁명이 절실하다.
특히 이제는 ‘NO DATA, NO MARKET’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독성 정보, 인체 영향, 환경 영향에 대한 명확한 데이터가 없는 제품은 시장에 출시돼선 안된다. 데이터 없는 제품을 판매하고 소비하는 것은 무책임한 위험 확산과 다를 바 없다. 철저한 정보 공개와 안전성 검증이 제품 유통의 전제가 돼야 하며 소비자 역시 정보의 유무를 구매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화학물질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 이제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철저한 예방, 투명한 정보, 책임 있는 행동만이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