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지 감수성으로 돌아본 판례 / 김종분 |
| 2025년 09월 11일(목) 1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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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비위 사건은 일반적인 사건들과 다른 특징이 있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일어나며 가해자와 피해자만 존재하고 다른 목격자가 없다. 또한 범행현장에는 CCTV나 녹음과 같은 객관적인 자료도 없다. 그래서 성비위 사건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 중 누구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진술이 일관되는지, 진술에 모순되는 부분이 있는지, 진술이 어느 정도 구체적인지, 거짓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유인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재판부를 구성하는 판사들의 성향이나 법리해석에 따라 판결은 진일보하기도 하고 보수적 판단을 공고하게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쟁점은 팽팽하게 맞서기도 한다.
2021다 219529 사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성희롱 관련은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준 경우는 물론이고, 특정 게시물이나 대화로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간접행위도 성희롱으로 인정될 수 있다. 2018도 7709 사건 대법원 판결은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을 명시한 최초의 판례로 알려져 있다. 회식 후 귀가차량에서 회사대표가 여직원의 허벅지를 만지는 등 업무상 위력으로 저지른 추행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에 기초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사법 판단의 새로운 기준으로 성인지감수성을 제시했다.
성희롱 재판에서는 사용자(사업주)의 직장 내 성희롱 방지 의무 및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다. 사용자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야 하고, 성희롱 발생시에는 가해자 격리와 함께 지체없는 조사를 해야 하며,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사용자가 직장 내 성희롱 예방조치를 다하지 않거나 성희롱 발생 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가 확대된 경우에는 피해자가 사용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2021나 24966 사건은 성희롱 사건에 있어서 성인지 감수성과 회식문화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에 대해 판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판결이다. 사용자에 대해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을 물은 판례도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하겠다, 징계를 내리겠다, 전보시키겠다는 등의 불이익 조치를 하거나 2차 가해를 했다면 사용자는 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23년 대법원 판결은 2차 가해에 대한 사용자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했다. 피해자가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법원의 성인지감수성이 높아져서 모든 성비위 재판에서 성인지감수성이 사법판단의 기준으로 정착되길 바란다. 재판부를 구성하는 판사의 법리해석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기도 하고 성평등에 퇴행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사회에 성평등인식이 확산되는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