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국가산단 대전환 ‘여수 모델’로 성공시키자 / 명창환 |
| 2025년 09월 23일(화) 18:17 |
|
1970년대 첫 가동된 여수국가산단은 대한민국 경제를 먹여 살린 기둥이다. 세계 최대 석유화학단지로 울산산단에 이어 생산액, 수출액이 두 번째로 많다. 입주 기업 300곳에 직접 고용 인원만 2만5천명에 육박한다. 연간 생산액 84조원, 수출액 3조2천억원을 기록하는 등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는 물론, 2008년 금융위기에서도 굳건했다.
안타깝게도 최근 이 거대한 기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발 공급 과잉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석유화학 설비를 대폭 확충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쏟아지자 국내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석유화학 산단이 밀집한 여수산단에도 치명적인 위험이 닥쳐왔다. 여수산단의 평균 가동률과 생산액, 수출 실적이 줄기 시작했다. 주요 대기업 공장 가동률은 2021년 87%에서 지난해 78.5%, 올해 60%대로 떨어졌다. 지방세액은 2023년 2천54억원에서 2024년 1천106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2년 만에 일자리 7천개가 사라졌다. 공장이 멈추니 사람이 오질 않고, 부동산과 요식업 등 지역 경제가 도미노로 타격을 입었다. 신규 투자도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남도가 나섰다. 2024년 7월 석유화학산업 위기 대응을 위한 용역을 추진하고 9월 전담 부서를 꾸렸다. 협의체를 구성해 애로·건의사항을 듣고 토론회 등을 열며 산업부에 국가 차원의 통 큰 지원을 건의했다. 10월에는 산업구조 재편, 인프라 개선 등이 담긴 5조6천억원 규모의 위기 극복책 39개를 발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수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받기 위해 필요성과 당위성을 산업부에 공격적으로 어필했다. 그 결과, 5월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발표되고 8월 지정돼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근로자들에게는 직업훈련비와 생활안정자금, 생계비를, 기업에는 고용유지·직업훈련 지원금을 드릴 수 있게 됐다. 전남도와 정부의 노력은 산소호흡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글로벌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과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해 구조전환이 시급하다. 정부의 권고와 지자체의 협조, 기업들이 자구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8월20일 정부와 10대 석유화학기업이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민간 구조개편 3대 방향으로 국내 NCC 설비 270-370만t 감축, 고부가·친환경 스페셜티로 전환, 지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기업들은 NCC 설비 20-30% 감축에 뜻을 모았다. 정부도 금융, 세제, R&D, 규제완화 등 종합 지원 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제 시작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친환경·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과 구조조정을 피할 순 없지만 하향식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면 곤란하다. 여수시민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대기오염 등 피해를 감내해 왔고, 산단 기업들은 국세 납부 등 국가 경제에 이바지해왔다. 지역 균형발전 측면 등을 두루 고려해 상향식으로 의견을 수렴, 피해를 최소화하고 미래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의 재편이 모색돼야 한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전제는 ‘사업을 어떻게 줄이겠다’가 아니라 ‘어떤 대안으로 지역을 살릴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친환경·탄소중립형 공정 인프라를 갖추고 기술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이를 효능감 있게 뒷받침할 특별법도 만들어야 한다. 이 같은 사항이 담긴 ‘석유화학 대전환 메가프로젝트’가 절실하다. 새 정부 국정과제에도 반영된 만큼 정부와 여·야, 기업과 시민이 손을 맞잡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여수 석유화학 산단의 전환을 중국발 위기 극복 선제모델(여수 모델)로 삼아야 한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시장질서 교란에 따른 국내 산업 분야에 대한 영향을 차단하고 구조조정, 미래 경쟁력 있는 분야로의 산업 대전환, 차세대 핵심 전략산업으로의 육성 등 ‘여수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여수산단의 아름다운 야경 불빛이 앞으로도 영원히 빛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