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 김선옥

2025년 10월 01일(수) 18:21

김선옥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산을 깎고 강을 돌리며, 바다를 메워 도시를 세우는 일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기술의 발전은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키웠고, 우리는 그 환상 속에서 문명을 쌓아 올렸다. 그러나 그 문명의 그림자 아래,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정말 나를 이해하고 있는가?”

올여름, 지구 곳곳에서 기후 재난이 속출했다. 폭우와 가뭄, 산불과 태풍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의 오만함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되묻는다. 우리가 자연을 지배한다고 믿는 순간, 자연은 그 믿음을 무너뜨린다. 겸손은 그 무너짐 속에서 시작된다.

겸손이란, 단순히 고개를 숙이는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타자의 존재를 존중하는 깊은 성찰의 자세다. 자연 앞에서의 겸손은, 인간이 생태계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나무와 바람, 물과 흙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지, 그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

필자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연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낮아진다. 숲의 침묵, 바다의 호흡, 하늘의 무한함은 인간의 언어로 다 담을 수 없는 세계다. 그 앞에서 나는 말보다 침묵을 배우고, 주장보다 경청을 배운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가장 깊은 진리를 들려준다. 그 진리를 듣기 위해서는 겸손이라는 귀를 열어야 한다.

예술과 문화 역시 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운다. 수많은 시인과 화가, 철학자들이 자연을 주제로 삼았지만, 그들은 자연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의 신비를 감각하고, 그 앞에서 자신을 비우려 했다. 자연은 인간의 거울이자, 스승이다. 우리가 자연을 파괴할 때, 결국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술은 가장 먼저 경고해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겸손해질 수 있을까? 도시의 빛과 소음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목소리를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 새벽의 안개, 낙엽의 속삭임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자연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겸손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기후 위기와 생태 붕괴의 시대에,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을 지배할 수 없다. 오히려 자연과 공존하고 협력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 시작은 겸손이다. 자연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워라.” 그 말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겸손해질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오늘도 숲의 그림자 속에서, 바람결 속에서,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멈춰 선다. 자연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나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 눈을 되찾기 위해, 매일 걷고, 듣고, 쓰고, 살아간다.

자연은 나의 스승이자 친구이며, 내가 가장 겸손해질 수 있는 존재다. 그 앞에서 나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다시 배우고 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무 한 그루의 생애, 강물의 흐름, 바람의 방향은 모두 인간의 삶과 닮았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친다. 인내와 순환, 소멸과 재생의 법칙을, 그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연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삶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다.

자연 앞에서 겸손해진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길이다. 더 낮은 자리에서 더 깊은 생명을 바라보는 일, 그 느린 걸음으로 더 넓은 세계를 감각하는 일,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연과 함께 숨 쉬고, 함께 존재하게 된다. 그 순간, 자연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하나의 생명 공동체가 된다.

생명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단순한 자원이나 배경으로 보지 않고, 함께 숨 쉬는 존재로 인식하는 전환을 의미한다. 나무 한 그루의 생명, 새 한 마리의 비상, 바람 한 줄기의 흐름 속에 인간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대상화할 수 없다. 그 깨달음은 겸손을 넘어 존재의 연대감으로 이어진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없이 묻는다. “너는 나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제 우리는 자연을 향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보호하거나 지배하려는 시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간은 자연의 질서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 길은 느리고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불편함 속에 진정한 생명의 존엄이 깃들어 있다.

“자연은 말하지 않지만, 가장 깊은 진리를 들려준다”-라빈드라니트 타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