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령 임진 의병장, 죽천 박광전 [노성태 원장의 남도인물열전](36)죽천 박광전 노성태 |
| 2025년 10월 15일(수) 1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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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 때에도, 72세가 돼서도 호남을 지키고 군왕을 지켜내기 위해 의병을 이끈 도학과 절의를 실천한 선비가 있다. 보성 출신의 죽천 박광전이 그다.
박광전(朴光前, 1526-1597)은 1526년(중종 21) 보성군 조성면 용전리에서 진사 이의의 아들로 태어난다. 자는 현재(顯哉), 호는 죽천(竹川)이고, 본관은 진원(珍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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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때, 흥양(고흥)에 유배온 홍섬에게 글을 배운 뒤, 22살 때에 송천 양응정의 문하가 된다. 어린 시절 박광전이 배움을 청한 홍섬은 이조좌랑 시절 김안로의 전횡을 탄핵하다 무고로 흥양에 유배중이었다. 그리고 41살이 되던 1566년(명종 21년), 처남인 문위세와 함께 안동의 퇴계 이황을 찾아 배움을 청한다.
박광전은 1566년(명종 21) 겨울을 온통 도산서당에서 보낸다. 그리고 이듬해인 1567년(명종 22) 정월, 도산서당을 떠나는 박광전에게 퇴계 이황은 “만년에 좋은 벗을 만났는데, 갑자기 헤어지게 되었으니 어찌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면 ‘주자서절요’ 한 질과 시 5수를 지어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퇴계 이황이 지어 준 5수의 시 중 제4수는 다음과 같다.
“아득히 제멋대로 달려온 나의 반평생이여,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듯 주자를 배웠으나, 늙고 병들어 실수가 많음을 몹시 부끄러워했는데, 죽천(박광옥) 그대의 도움으로 다시 광명을 얻었다오”
제자에 대한 스승의 사랑이 듬뿍 묻어 있다. 이황이 준 시 5수는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에 있는 박광전의 재실인 ‘화산재’ 마루에 편액돼 걸려 있다.
보성으로 돌아온 박광전은 퇴계 이황으로부터 받은 ‘주자서절요’를 ‘주자전서’와 비교해가며 꼼꼼히 읽는다.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문목(問目, 질문서)을 만들어 퇴계에게 질문했고, 퇴계는 정성껏 답서를 보낸다. 죽천의 물음에 퇴계가 답장한 것을 정리한 책이 ‘주자서절요문목’이다.
- ‘시민여상’을 실천하다
퇴계 이황을 만나고 온 다음 해인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합격한다. 마흔세 살, 한참 늦은 나이였다. 1571년(선조 4), 전라도 관찰사였던 미암 유희춘의 추천으로 전주 경기전 참봉에 제수된다.
1410년(태종 10) 조선은 전주,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임금의 화상)을 모시는 ‘어용전’(御容殿)을 세웠는데, 1442년(세종 24)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으로 이름을 고친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관리했던 경기전 참봉은 종9품 최말단 관직이었다.
1573년(선조 7) 경기전 참봉에 이어 헌릉 참봉에 제수된다.
‘헌릉’(獻陵)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쌍릉을 말한다. 그리고 1581년(선조 14), 임해군과 광해군의 교육을 담당하는 왕자사부에 제수된다.
당시 임해군은 9살, 광해군은 6살이었다. 박광전이 두 왕자의 사부에 제수됐음은, 박광전의 인품과 학문이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임해·광해군의 사부 이후 박광전은 1583년(선조 16) 함열 현감, 1587년(선조 20) 회덕 현감으로 나간다.
함열은 지금 익산시 부근이었고, 회덕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일대의 현이었다. 현감이 된 박광전의 통치 철학인 ‘시민여상’(視民如傷)이 동헌 벽에 붙는다.
‘백성 위하기를 다친 사람 보듯이 가엾게 여긴다’라는 뜻이니, 백성을 진정으로 돌보고 보살피겠다는 다짐이었다.
‘시민여상’은 ‘맹자’ 이루(離婁) 하편에 “문왕(文王)은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처럼 여겼고, 도를 열망하기를 아직 보지 못한 듯이 하였다”라고 나온다.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은 백성을 사랑하는, 이른바 애휼정치(愛恤政治)에 더욱 힘써야 한다”며 “백성을 다친 사람 돌보듯 하라”고 말한다.
함열 현감 박광전은 백성을 아픈 사람처럼 진정으로 돌보고 보살핀 목민관이었다.
회덕 현감 시절 박광전은 불의와 맞서 싸운다. 왕실의 종친이 노비 문제로 촌민과 송사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 송사는 11명의 현감이 바뀌도록 미결로 남아 있었다.
박광전은 소송 자료를 정밀하게 살핀 후 종친이 아닌 촌민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자, 왕실 종친은 사헌부에 고발한다. 사헌부가 내려와 조사했지만, 박광전이 바른 판결이었음이 밝혀진다. 왕실의 종친과도 당당히 맞선 것이다.
그러나 절의의 실천은 많은 적을 만들어낸다. 어사의 미움을 사 파직됐고, 고향으로 돌아온 해가 임진왜란 발발 3년 전이었다.
-최고령 의병장이 되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20여 일 만에 한양이 함락된다. 이때 나라를 구한 것은 전라도 의병과 이순신이 거느렸던 전라좌수영 소속의 수군들이었다.
담양에서 거의해 6천 의병을 이끈 고경명이 1592년(선조 25) 7월10일(음력) 금산전투에서 순절한다.
이 소식을 들은 박광전은 임계영 등과 더불어 병중임에도 다음의 격문을 쓴다.
“임진년 7월 고경명이 금산에서 패하여 죽으니 보성의 전 현감 박광전, 임계영, 전 정자 정사제, 장흥의 진사 김여중, 문위세 등은 능성 현감 김익복과 더불어 삼가 재배하고 여러 고을의 사우들에게 통문을 돌립니다. 아! 국가가 믿고서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하삼도인 충청·전라·경상도가 건재하였기 때문이었는데, 경상도와 충청도는 이미 무너져 적의 소굴이 되었고, 호남만이 겨우 한 모퉁이를 보전하여 군량 조달과 군사의 징발이 모두 이 한 도만을 의지하고 있으니, 국가가 부흥할 기틀이 실로 여기에 달려있다 하겠습니다.……이 격문이 도착하는 날에 곧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온 고을을 효유하여 군인들을 기록해서 이달 20일 보성 관아의 정문 앞으로 모이도록 하시오.”
7월20일 보성 관아에 700명이 모인다. 노령에 신병까지 겹친 박광전은 임계영을 대장에 추천하고 처남 문위세를 양향관(糧餉官, 군량관), 큰아들 박근효를 참모관, 정사제를 종사관으로, 순천에서 합류한 장윤을 부장으로 삼아 의진을 구성한다. 작은아들 박근제도 의병에 참여시킨다. 범(虎)을 그린 깃발을 부대의 상징으로 삼았는데, 화순에서 거의한 최경회 의병부대의 깃발은 송골매(鶻)였다.
임계영이 대장이 된 보성의병은 남원에 도착, 최경회 의진에 합류하였다. 최경회는 화순을 중심으로 전라우도에서 거병하고, 박광전·임계영은 보성을 중심으로 전라좌도에서 거병하였기 때문에 최경회 의병을 전라우의병, 임계영 의병을 전라좌의병이라 불렀다. 박광전은 고향 보성에 남아 군량을 조달하는 등 후방 지원을 담당한다.
임계영이 이끈 보성의병은 남원과 장수를 오가며 왜적을 기습 큰 전과를 올린다. 9월에 들어서면서 금산·무주의 적이 약화되고 경상도가 중심지가 되자, 경상우도 관찰사 김성일과 영남 의병장 김면으로부터 구원 요청을 받는다. 이에 전라좌·우 의병은 경상도로 이동하였고, 영남 의병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성주·개령 지방을 수복한다. 그리고 1592년(선조 25) 10월의 제1차 진주성 전투 때에는 최경회의 전라우의병과 함께 진주성 외곽에 주둔하면서 왜군을 공격, 진주성 1차 대첩의 승리에 힘을 보탠다.
전라좌·우 의병의 영남 지역에서의 활약상이 어떠했는지는 남원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조경남이 남긴 ‘난중잡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의병장 정인홍과 김면의 군사가 감히 홀로 당하지 못하여 전라좌·우 의병에게 구원을 청함에 두 의병장이 군사를 이끌고 거창·합천 등지로 달려와서 거년(1592)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개월 동안 혹은 산성에 주둔하면서 진주의 적을 쫓는데 협력하였고, 혹은 요로를 지키면서 성주·개령을 나누어 공격하며 날마다 싸우지 않은 적이 없었고, 이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적이 움직이지 못하여 영남의 6·7개 읍이 온전히 살게 되었으니, 두 군사의 공이 이것으로 보아도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임계영이 이끈 전라좌의병은 이듬해인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가 벌어질 때 부장 장윤에게 정병 300을 거느리고 관군을 돕도록 하였지만, 장윤은 성이 함락되면서 전사한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왜군이 전라도 땅 곳곳을 유린하자, 박광전은 전 판관 송홍렬과 생원 박사길 등에게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은 후 의병장에 추대된다. 박광전 의병은 화순 동복에서 시마즈의 왜군을 물리치며 값진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게 되는데, 박광전의 나이 72세였다.
-‘호남 5현’으로 평가받다
죽천 박광전은 절의를 실천한 의병장 이전에 뛰어난 성리학자였다. 그의 제자였던 우산 안방준은 박광전의 삶을 정리한 행장(行狀)을 쓴다. 그는 “아! 우리 호남은 본래 문헌(文獻)의 고장으로 불렀다. 고려 말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학문으로 세상에 이름이 높았던 자는 오직 김하서(김인후)·기고봉(기대승)·이일재(이항)·유미암(유희춘), 그리고 우리 선생(박광전)뿐이다”라고 쓰고 있다. 안방준은 호남의 5현(五賢)으로 김인후, 기대승, 이항, 유희춘과 함께 박광전을 평가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안방준은 “하서의 학문과 조행, 절의와 문장은 높아서 따를 수 없고, 고봉의 명쾌한 의논이나, 일재의 강하고 굳세어 굽히지 않음이나, 미암의 넓은 지식과 많은 문견도 또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일이나, 실천의 독실함을 논하자면 저분 현인들이 우리 선생과 더불어 누가 더 나은지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학문과 문장, 명쾌한 의논 등은 김인후나 기대승, 이항과 유희춘이 더 뛰어날 수 있겠지만, ‘실천의 독실함’ 즉 ‘절의의 실천’은 죽천 박광전이 더 앞선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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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의 실천은 당대에 끝나지 않았다. 장남 근효는 부친과 함께 임란 의병으로 활동했고, 손자 춘수와 증손자 진형도 병자호란 당시 또 의병이 되어 청주까지 진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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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전의 사후에 시호 ‘문강(文綱)’이 내려지고, 보성군 노동면에 그를 기리는 용산서원이 건립된다. 용산서원에는 그의 ‘죽천집(竹川集)’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용산서원 바로 옆 보성 의병기념관 2층에는 죽천 박광전 기념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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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