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치유 품어낸 ‘호랑가시나무 숲’ 조각 언어로 피다 김나리 ‘호랑가시나무 숲-움직임 없는 보호자의 땅’展…23일까지 아트폴리곤 최명진 기자 |
| 2025년 11월 04일(화) 1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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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림동의 역사적 기억과 영적 풍경이 현대 조각 언어로 피어난다.
김나리 작가 개인전 ‘호랑가시나무 숲-움직임 없는 보호자의 땅’이 오는 23일까지 아트폴리곤에서 열린다.
양림동은 광주의 근대 문명이 처음 들어선 터전이다. 1904년 이후 미국 선교사들이 이곳에 정착하며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을 세웠고, 나환자 구호사업과 간호교육 등 한국 근대 의료와 복지의 출발점이 마련됐다.
유진벨, 오웬, 서서평, 포사이드, 언더우드 등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을 거쳐 갔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정율성, 김현승, 천경자 등 예술가들이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새로운 예술의 씨앗을 틔웠다.
양림산은 나라의 위기 때마다 ‘움직임 없는 보호자’처럼 그 자리를 지켜왔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금남군 정충신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일제강점기에는 광주 3·1운동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YMCA·YWCA를 세운 인물들과 항일 결사조직 신문잡지종람소, 흥학관의 활동가들도 이 지역에서 뜻을 모았다. ‘광주의 어머니’로 불린 조아라 여사의 발자취 역시 이곳에 남아 있다.
이 산에는 지금도 수령 400-500년으로 추정되는 호랑가시나무가 자생한다.
귀신과 액운을 막는 나무로 알려진 호랑가시나무(Holly)는 영어 단어 Holy(성스러운)와도 닮아 있다. 뾰족한 잎은 예수의 고난을, 붉은 열매는 피와 사랑을, 가시는 면류관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라 불리는 이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을 지켜온 수호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배경 위에서 도예가 김나리는 전시 ‘호랑가시나무 숲’을 펼친다.
이번 전시는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슬픔과 치유의 욕망, 그리고 세계를 향한 연민의 감정을 ‘흙’이라는 근원적 재료로 시각화한다.
김나리의 조각은 ‘얼굴 형상’을 통해 인간 존재의 무게를 묻는다.
그의 인물상은 특정한 초상이 아니라 인간과 동식물, 영혼의 세계를 아우르는 보편적 존재의 상징이다.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다루는 ‘얼굴’은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도상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이어주는 내면의 언어다.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들은 훨씬 더 깊은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침묵 속에서 슬픔과 위로, 상처와 치유의 시간을 품으며, 서로의 얼굴을 비추는 하나의 ‘숲’을 이룬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측은 “이번 전시는 양림이라는 장소의 기억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맞닿은 명상의 공간”이라며 “인간과 자연, 신성과 예술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