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 김병도 |
| 2025년 12월 28일(일) 18:18 |
|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치재정 강화가 필요하다. 자치단체가 스스로 지역의 미래산업을 발굴하고 장기 계획을 추진하려면 재정적 기반이 탄탄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열악하다. 중앙과 지방 간 세수 배분을 조정하고, 지방세·공동세원 체계를 확충하는 것은 자치발전의 가장 기반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둘째, 자치역량을 키워야 한다. 단순히 권한을 넘겨받는 것으로 역량이 강화되지 않는다. 지역이 스스로 미래 전략을 선택할 능력과 구조를 갖추는 것이 자치의 핵심이다. 유럽의 지역혁신전략(RIS)처럼 지역이 강점과 기회를 분석해 미래산업을 명확히 설정하고, 중앙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광주·전남이 선택해야 할 핵심 산업전략 중 첫 번째는 에너지 대전환 산업이다. 전남은 국내에서 가장 큰 재생에너지 잠재량을 보유한 지역으로, 해상풍력·수상태양광·수소·바이오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광주는 국가 AI 집적단지와 첨단 광산업을 기반으로 AI 기반 에너지 관리 등 기술적 강점을 가진 도시다. 이 두 지역이 협력하면 ‘전남의 에너지 생산 능력’과 ‘광주의 에너지 기술과 데이터 기반 능력’이 결합해, 국가 에너지 산업 전환을 주도할 수 있는 강력한 초광역 에너지 혁신 벨트를 형성할 수 있다.
둘째, 디지털·AI 중심 산업 구조 전환이다. 광주는 이미 AI 산업 생태계 조성에 국가적 투자가 집중되고 있고, 자동차·센서·의료 데이터 분야에 강한 기반이 있다. 전남은 농생명 산업, 식품 가공, 해양·환경 데이터 등 ‘AI를 적용하기 좋은 분야’가 풍부하다. 광주가 AI 기술 역량을 공급하고, 전남이 데이터·응용 산업을 제공하는 구조는 매우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지방소멸 극복이다. 핵심은 정주 환경 혁신이다. 많은 지역에서 청년들이 떠나는 이유는 단지 일자리 때문만이 아니다. 의료, 교육, 문화, 여가, 이동, 주거 등 생활 기반의 질이 수도권과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광주·전남은 문화·예술 자산, 자연환경 등 강점을 갖고 있지만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투자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넷째, 초광역 경제권 구축이다. 독립적 행정과 통합적 경제를 의미한다. 이제 세계는 더 이상 독립 단위의 지방자치단체나 개별 도시 간 경쟁이 아니다. 독일의 루르·라인 지역, 일본의 간사이권, 캐나다의 광역 뉴 토론토 등은 도시 간 협력을 통해 지역 경제의 규모와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광주·전남 초광역권’을 기반으로 산업, 교육, 교통, 문화, 관광, 인력 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해야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초광역 단위에서 공항·항만·도로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재배치하고, 대형 프로젝트와 국제행사를 공동 유치하는 체제로 나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잠재적 가치 활용이다. 광주·전남은 미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RE100 기반 산업단지, 수소·암모니아 생태계, 농생명 클러스터, AI 융합산업, 해양환경 및 탄소중립 기술, 문화·관광 콘텐츠 등 이미 기반은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하나의 거대한 비전과 내러티브로 묶어내고, 중앙정부와 글로벌 기업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적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정치적 구호로 멈춰서는 안 된다. 지방이 실질적인 자치재정과 전략적 프레임을 갖추고, 정주환경의 질을 높이며, 디지털·에너지 산업전환을 선도하고, 초광역 단위의 협력 체계를 구축할 때 우리는 진정한 균형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지금 어떤 미래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남부권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의 지속 가능한 성장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이제는 말보다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