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넘치는데, 왜 마음은 닿지 않는가 / 김선기
2026년 10월 11일(일) 18:56
김선기 남도인문학연구원장·문학박사
우리는 말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휴대전화에는 쉴 새 없이 메시지가 도착하고, 인터넷에는 수많은 주장과 의견이 쏟아진다. 누구나 본인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말은 이렇게 많아졌는데,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말하는 법은 배웠지만 듣는 법에는 서툴렀다. 내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은 중요하게 여겼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그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했다. 대화하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다음 말을 준비하기 일쑤다. 그렇게 대화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각자의 주장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고 만다.

이러한 모습은 개인의 일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반박할 말을 먼저 찾고, 온라인 공간에서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난과 혐오의 언어가 오간다. 서로 다른 의견이 만나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기보다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다. 말은 소통의 도구여야 하지만,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높은 벽을 쌓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문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문학은 본래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바라본 세계와 그 마음의 떨림을 함께 느끼는 일이다. 소설을 읽는 것 또한 내가 살아보지 못한 누군가의 삶으로 들어가 그의 기쁨과 슬픔, 상처와 고독을 마주하는 경험이다. 따라서 문학은 나와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쉽게 판단했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며칠 전 한글날을 보냈다. 우리는 한글이 지닌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그 문자로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지도 돌아볼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문자를 가졌더라도 그것으로 타인을 모욕하고 상처 입힌다면 언어의 가치는 빛을 잃는다. 문자의 우수성이 곧 언어생활의 품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의 품격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수준과도 맞닿아 있다. 정치와 행정의 언어는 시민의 삶을 향해야 하고, 언론의 언어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사람의 존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큰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내뱉는 말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말 한마디가 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지만, 오래된 불신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어서다.

그렇다고 소통이 언제나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때로는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는 자세다. 경청은 본인의 생각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대화는 승패를 가르는 다툼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바뀐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도 정작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놓칠 때가 많다. 말끝에 묻어나는 망설임, 차마 꺼내지 못한 사연, 침묵 속에 감춰진 속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삶을 이해하려는 데서 시작된다.

한글날을 보내며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는가. 말은 입에서 태어나지만, 그 울림은 사람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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