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산하 묻어둔 통곡, 펜 끝으로 복원 ‘야만의 연대기’

한상희 작가, 대하 역사소설 ‘어느 혁명가의 비애’·‘가마골’ 동시 출간
30년 공직 내려놓고 현대사의 피·사랑 되살린 늦깎이 대가의 초상

오복 기자
2026년 10월 11일(일) 20:31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이념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들고, 거대한 이념의 충돌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

붉은 산하에 묻어둔 통곡을 펜끝으로 복원한 ‘야만의 연대기’가 나왔다. 담양 출신 한상희(사진) 작가는 대하 역사소설 ‘어느 혁명가의 비애’와 ‘가마골’(조인출판사)을 동시에 펴냈다. 7-8년 전부터 사료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하며 공을 들인 작품이다.

두 소설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서로 다른 시선에서 바라봤다.

‘어느 혁명가의 비애’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해방 이후 북한 권력의 중심에 섰고 끝내 숙청된 박헌영의 일대기를 그렸다. 저자는 그를 역사 속 정치인이 아닌 사랑하고 좌절했던 한 인간으로 풀어냈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신분적 굴레, 일제의 고문과 투옥, 아내 주세죽과의 이별 등이 서사를 이끈다.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광인 행세를 했던 일화부터 모스크바에서 주세죽과 김단야의 재혼 소식을 접한 순간, 첫사랑 현미옥과의 인연까지 개인의 삶에 드리운 시대의 그림자를 전한다.

‘가마골’은 작가의 고향인 담양이 무대다. 영산강 시원지인 가마골은 6·25전쟁 당시 군경 토벌대와 빨치산이 맞부딪힌 격전지였다. 소설은 전쟁과 이념 대립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희생된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담양 국(鞠)씨 가문의 몰락을 중심으로 위장 승려 한산과 국승순의 사랑, 저격수로 전쟁터를 떠도는 소녀 ‘번개탄’ 김종순 등의 삶이 펼쳐진다. 거대한 역사 속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와 사랑, 상실을 조명했다.

한상희 작가는 “역사는 죽어 있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살아 꿈틀거리는 미래”라며 “젊은 세대가 낡은 이념 대립과 진영 논리의 덫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한 한 작가는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다 직장 문제로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30여년간 중앙부처 공직(3급)과 국책연구원 생활을 거쳐 퇴임한 뒤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렸다. ‘겨울날의 환상 속에서’, ‘칼라스의 영욕’, ‘평양 컨스피러시’, ‘순사’, ‘그을린 풍차’, ‘흰 스카프 소녀’, ‘고근의 이젤’ 등 저서를 꾸준히 펴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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