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 뇌건강치과학 XXXI

-AI시대에도 말 한마디(I), 인문학과 입문학

2026년 10월 18일(일) 18:59
강동완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사랑나눔 뇌건강치과학 AI 연구소 대표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 빚어 타인과 소통하는 경이로운 문, 그것이 입이다. 한강 작가는 2024년 12월 7일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빛과 실」에서 언어를 우리를 연결하는 ‘금실’에 비유했다. 그 실에는 기억과 감각, 생명과 빛이 흐른다. “안녕”, “괜찮아”,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라는 짧은 말 한마디에도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온기가 깃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오랜 속담은 혐오와 편견의 언어가 넘치는 AI 시대에도 깊은 울림을 던진다.

인간은 입으로 웃고 사랑을 고백하며 절망에 빠진 이를 위로한다. 그러나 같은 입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미움을 퍼뜨리기도 한다. 말은 입에서 나오지만 그 준비는 뇌에서 먼저 시작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 상황과 관계를 살피며 입 밖으로 꺼낼 말을 선택한다.

말하기는 의도와 감정, 기억과 맥락을 정교하게 엮어 표현을 빚어내는 고도의 인지 활동이다. 치매 환자가 사랑하는 이의 이름과 과거를 잊어가는 과정, 뇌졸중 환자가 “밥 먹고 싶어요” 라는 말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재활 현장은 입과 뇌 기능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필자는 삶의 근원적 가치를 성찰하는 ‘인문학(人文學)’과 뇌건강 치과학을 위한 ‘입문학(口文學)’을 교차해 사유하고자 한다. 인문학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면, 입문학은 그 가치를 입을 통한 행위와 관계 속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묻는다. 말하기와 미소, 낭송과 기도, 노래와 웃음, 때로는 무거운 침묵까지, 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통을 생명 활동과 뇌건강의 관점에서 탐구하자는 제안이다.

입은 관계의 문이다. 숨은 몸을 살리고, 노래는 호흡과 리듬으로 감정을 움직이며, 미소는 말보다 먼저 마음의 신호를 전한다. 기도와 낭송은 기억과 소통의 의미를 되새기고, 대화는 타인의 관점을 배우는 성장의 자리가 된다. 신체 기능과 정서, 인지, 사회적 연결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살피는 일은 입문학의 핵심 탐구 과제다.

뇌의 신경 체계는 호흡과 발성, 혀와 입술, 턱의 정교한 움직임을 조율한다. 성대에서 만들어진 음성은 인두와 구강, 비강을 거치며 의미를 품은 말소리로 다듬어진다. 입문학은 이 발성의 기교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누구에게, 왜 말하는가. 내 입을 떠난 말에 어떤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입문학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 사상적 접점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기본 자음 ㄱ, ㄴ, ㅁ, ㅅ, ㅇ은 어금니·혀·입술·이·목구멍 등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떴고, 기본 모음 ‘·’, ‘ㅡ’, ‘ㅣ’에는 하늘(天)·땅(地)·사람(人)을 잇는 우주적 원리가 담겼다. 세종은 백성이 자기 뜻을 존엄하게 표현할 길을 열었다. 소리의 근원을 인체와 우주의 섭리에서 함께 찾은 훈민정음은 입문학을 생각하게 하는 문화적 자산이다.

인류의 정신사에서도 소리와 말은 창조의 상징이었다. 그리스 신화가 우주의 카오스적 탄생을 ‘입이 쩍 벌어진 모습’으로 묘사하고, 성서의 창세기는 ‘말씀’과 ‘창조’의 깊은 관계를 드러낸다. 입은 문명을 직조해 온 인간 정신의 서사를 만들어온 통로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유려하고 정교한 문장을 순식간에 생성한다. 그러나 매끄러운 문장이 곧 공감과 책임을 동반한 참된 말은 아니다. AI의 위로가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은 문장의 완성도만으로 경험과 관계의 깊이까지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말은 침묵과 망설임, 떨림과 온기를 함께 품는다.

건강한 입은 질병이 없는 상태에 그치지 않는다. 다정하게 온기를 나누고 타인과 연결되는 생명력 넘치는 입이다. 뇌건강 역시 지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타인의 작은 신음에 귀 기울이고, 감탄하며, 때로는 말없이 마음을 전하는 포용력도 의학적 건강의 정의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중요한 가치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내 한마디가 상처가 될지,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될지를 헤아리는 책임감이다.

인문학이 삶의 방향을 묻는다면, 입문학은 나의 입으로 어떤 관계의 세계를 만들 것인지를 묻는다. 말은 인간이 세상에 남기는 가장 오래된 흔적이자, 따뜻한 선물이다. 오늘 당신의 입술을 떠난 그 한마디가 누군가를 절망에서 건져 올리는 생명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물음에 매일의 말과 행위로 묵묵히 답하는 것, 그것이 평생토록 다듬어야 할 입문학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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