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돌탑 앞 비밀 소원 / 수필 - 장유심
2026년 10월 19일(월) 18:22
아무도 ‘코로나’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코로나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는 여섯 살 손자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다.

코로나 기세가 한풀 꺾인 후, 우리는 서둘러 도시를 벗어났다. 그리고 백련사에 도착했다.

아직 봄이 덜 깬 2월 중순, 동백꽃 구경하기엔 좀 이른 것 같았다. 실망이 클 줄 알았던 아이들은 오히려 그 반대다.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너희들이 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관심 덩어리인 손자가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연년생인 동생도 오빠를 따라 달렸다. 마스크들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양 길가 배경처럼 아이들에게서 밀려났다.

“할머니 빨리 와보세요. 빨리요.”

손자가 멈춰서서 손짓했다.

“빨리요 빨리.”

손녀도 야단법석이다.

“잠깐만!”

일단 진정시키고, 다가가 보았다. 손자와 손녀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돌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말로 표현 못 한 소원들이 이렇게 많은가 싶었다. 하기야 사찰마다 연등이 물결 이루는 걸 보면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람들이 돌멩이를 올려놓고, 거기에다 소원을 빈단다. 기도 내용은 비밀에 부쳐야 기도발이 통한다.”라고 말하는데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났다.

어느 늦가을, 내 생일날이었다. 어머니는 소박한 생일상을 윗목에 차려놓고, 기도하셨다. 어머니의 소원이 무척 궁금했다. 어머니는, 말하면 기도발이 사라진다며 비밀에 부치셨다. 그러나 내가 건강하게 잘 자란 걸 보면 그 소원 알 것도 같다.

“나도 소원 빌어야지.”

손자가 돌멩이를 주워 바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두 눈 꼭 감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꽃구경, 절 구경은 관심 밖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바위가 눈에 띄면 돌멩이를 올려놓고, 기도했다, 일행과의 거리도 점점 멀어져갔다. 도대체 무슨 소원이 그리 많길래 기도만 올리느냐고 묻자, 비밀이니까 말할 수 없다며 웃기만 한다. 대답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할머니 품에서 자라며 한 달에 고작 두어 번 엄마, 아빠 만나는 손자다. 아직은 부모 그리울 어린 여섯 살 연년생, 동생에게 오빠 노릇 버거워도 밖으로 소리 내 실컷 뱉지 못하니, 너도 쌓인 게 많았겠다 싶었다.

손자의 속도에 내 보폭을 맞추며 모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개 극락왕생, 아무개 대학 합격, 성취 등 저마다 이름표가 달린 연등, 그리고 돌탑에 기도하는 사람, 부처님께 108배 하는 사람, 먼 산에 대고 기도하는 사람…. 모습은 달라 있어도 소원의 무게는 모두 같아 보였다. 대웅전 앞에 서서 두 손 합장하고 ‘요양병원에 계시는 우리 어머니 잘 보살펴주십시오.’ 하고 나도 소원을 빌었다.

손자는 계단 위, 담벼락 아래, 일주문 턱, 화장실 길목 등 돌만 보면 주워 와 돌탑을 쌓고 기도했다. 할 수만 있다면 손자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싶었다. 행동 개시, 명탐정 이지도르 보트를레가 되기로 했다.

“너도 인천 엄마 집 가보아서 알잖아. 그곳이 얼마나 먼 곳인지. 동생도 참는데,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

손자는 내 속을 훤히 꿰뚫고는 그래도 비밀은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넌지시, 혼자 많은 소원 빌면 부처님께 염치없지 않으냐, 할머니하고 나눠서 빌자고 하자 “소원 하나밖에 없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일이 이렇게 되면 나 혼자 소설을 썼다는 얘기가 된다. 단 하나라는 소원이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주차장에 먼저 도착한 남편이 손자더러 빨리 달리라고 외쳤다.

승용차 앞자리는 작은딸에게 양보하고, 손자 손녀와 뒷자리에 앉았다. 아직 밀봉된 손자의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자는 포기했다는 듯 내 귀에 대고 “할머니한테만 알려줄게요. 사람들에게서 코로나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하더니 해맑게 웃었다.

이걸 어떡해! 괜히 입방정 떨어서 코로나가 사라지지 않을 판이다. 때로는 아이가 어른보다 나을 때가 있었다.

<장유심 약력>
▲광주 시민백일장 장원, 오늘의 가사문학 가사수필 신인상
▲한국가사문학 공모전 가사수필 최우수상
▲광주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그림책 : ‘호랑이 사탕부케’, ‘늘보가 나무에서 떨어졌어요’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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