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8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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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희망이란 바로 ‘나’를 신뢰하는 것”
[만나고 싶었습니다] 조용기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

  • 입력날짜 : 2010. 01.26. 00:00
“국가의 힘은 배움, 앎에서 나와” 천막 두 채로 교육타운 일궈내
‘손가락으로 바위 뚫어라’ 외길 인생보고서 ‘인간학’ 강의 열정

2009년 11월 20일 육군사관학교 태릉대학.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을 열혈 왕성한 육사 생도들이 지켜보고 있다. 노인은 날카로운 젊은이의 눈빛에도 흔들림 없이 육사 생도를 제압하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입을 뗀다. 육사생도들이 ‘명강의’였다고 극찬한 그날의 강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올해 84세의 늙은이입니다. 인간 80세를 자기 수라고 했습니다. 그 이상 더 사는 것은 남의 나이를 빼앗아 먹는다 했습니다. 80이 넘으면 안방에 앉아 있으나 저 푸른 솔밭에 누워 있으나 매한가지라 합니다. 죽은 송장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그렇게 운치 있게 표현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 내가 여러분께 무슨 얘길 해야 할까 망설여집니다. 그저 내가 살아온 짧지 않은 세월을 더듬으려 합니다. 취할 것은 취하시고 버릴 것은 버려주세요.”

천막 두 채로 시작한 교육사업이 오늘의 남부대학교 전남과학대학 옥과고등학교 우암유치원 등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종합 교육 기관으로 육성 발전시킨 교육인생 60년의 과정을 더듬으면서 ‘교육은 희망을 가르치는 일이다’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이는 우암학원 설립자 우암 조용기(愚岩 趙龍沂·85·사단법인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박사 였다.

  # 힘을 키우려면
1940, 50년대는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애국이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공부 한다는 것은 개인의 영달에 앞서 먼 미래, 국가 기반을 단단히 해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배고파 허기지는데 오늘 굶으면서 내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대부분 보릿고개를 어렵게 넘던 시절에 책상 앞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희생이었다. 배고픔을 덜기 위해 품이라도 팔고 한 평 땅이라도 일궈 씨앗을 뿌려야 할 상황에 공부를 한다는 것, 그것은 ‘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길 이었다.
“내가 우암학원을 창립한 것은 1948년 해방공간에서 입니다. 일본강점기에 힘없는 국민의 설움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던 나는 평소 꿈을 이뤄내고자 과감히 교사직을 그만두고 옥과로 내려가 20대 초반에, 어찌 보면 철이 없고, 어찌 보면 세상을 멋지게 바꾸어보려는 꿈과 투지가 가득한 그때, 교육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교육사업이라니까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순수한 열정에 애국심을 보태서 그저 배움의 터전을 연 것입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그 나이에 왜 하필 고달프고 팍팍한 교육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 어떤 동기가…
“알다시피 일본은 미개한 나라였습니다. 왕인박사가 글을 가르쳐주고 기술을 전수해 일본문화 기초를 만들었죠. 우리나라가 스승의 나라인 겁니다. 그런데 왜 스승의 나라 대한민국이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힘, 그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배움, 앎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힘을 기르지 못했습니다. 양반이다 상놈이다 농사꾼이다 장사꾼이다 하며 사농공상 운운하고 명분만 앞세우다 교육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일제시대 우리 국민 78%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문맹자였습니다.
그때 일본인은 80% 이상 현대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술국치와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우리도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 길을 교육에서 찾았습니다.”
‘이제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보자. 무엇이 있는가? 과거에는 배우지 못해서 당했다면 우리도 배우자. 배워서 힘을 키우자. 아는 것이 힘이다’는 생각이 우암의 온몸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생각이 있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배우려면 터전이 있어야 한다, 학교를 만들자!’고 맘먹고 천막 두 개를 쳤다. 한 채는 교무실로, 한 채는 교실로 사용했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천막 두 채로 시작한 우암학원이 오늘날 거대한 교육타운이 된 것이다.

# 아침형 인간
우암은 지금도 새벽 4시에 일어난다. 20대 초반 황무지에 학교 깃발을 세운 순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먼저 일기를 쓴다. 어제 한 일, 오늘 할 일을 일기에 정리해보고 집을 나와 학교로 향한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학교에 도착해 주변을 돌아보고 할 일을 찾는다. 꺼지지 않는 전깃불이 있으면 끄고 수도꼭지가 잠겨있지 않으면 잠그고 독신교사 숙소의 연탄불을 갈아준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습관된 것은 일주일을 9일로, 하루 24시간을 26시간으로 늘려 사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듯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침형 인간으로 살면서 나에게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해준 것은 새벽녘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깊은 성찰의 시간입니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시간, 학교를 산책하며 내 안의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기쁨의 열정에 휩싸이고, 때로는 절대 고독과 고뇌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두렵고 외로워서 도망가고 싶을 때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내 안의 내가 대답해줍니다. 여기서 포기하지 마라,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명감을 다시 갖는 최면이었지요.”
85세 우암의 일주일 스케줄은 지금도 일주일 9일, 하루 26시간이다. 월요일 오전에는 광주 남부대학교에서 ‘조용기 인간학’을 강의하고 오후에 서울로 올라가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으로서 일을 본다. 서울에의 하루하루는 조찬 회동에서부터 저녁 늦게까지 회의가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그런 강행군이 대충 매듭지어지는 목요일 오후에 다시 광주로 내려와 금요일 오전에 전남과학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10년 넘게 이렇게 하고 있다. 40대 장정도 매주 서울과 광주, 옥과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회의와 강연을 계속하라면 아마 죽겠다고 나자빠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복도에서 소리가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강의한다.

- 강의하고 계신 ‘인간학?’ 생소합니다.
“나는 길을 걷거나 버스 속에서 혹은 광장 같은 곳에서 사람들을 눈여겨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생기가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무표정한 사람, 무언가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는 사람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표정뿐 아니라 옷맵시 걸음걸이 말투 등등 열 명이면 열 명이, 백 명이면 백 명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겉모습과 느낌이 다른 만큼 그들의 삶 역시 다를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늙고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 사람에게도 목청을 돋우며 자신을 얘기한 청춘시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학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오늘 어떤 모습으로 서 있든지 삶의 대목 대목에서 우리가 배우고 느끼고 반성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즉 한 인간의 총체가 인간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간학이란 이름으로 처음 강의에 등장한 실존인물은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씨다. 그는 살아생전 ‘왕 회장’으로 통했다. 막노동으로 시작해서 한국 최대의 갑부가 됐으며 한국경제를 일군 사람이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삶과 철학은 지금도 젊은이들에게 전수되고 있는데 그것이 ‘정주영 인간학’이다. 그것도 한국의 명문이요 지성의 총아들이 모인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정주영 인간학’을 설강했을 정도다.
서울대학교는 왜 ‘정주영 인간학’을 과목으로 만들었나. 오늘 배운 지식이 내일에는 퇴색하는 최첨단 초스피드 시대에 한 시대를 앞서 살았던, 그것도 핍박과 질곡의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이 왜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남아 많은 사람들의 본이 되고 있는가? ‘조용기 인간학’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주영과 나는 동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일본강점기에 태어나 망국민으로서 고난의 언덕을 넘었으며 광복 후 혼란과 대한민국 건국, 한국전쟁,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정주영은 기업인의 길을, 나는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조용기 인간학’은 시대가, 조국이, 한 개인이 삶을 어떻게 성장하게 하며 좌절케 하는지, 또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고 긴 터널을 걸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그 터널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조용기 인간학’ 강의는 우암의 인생 보고서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상대를 면전에 두고 평가를 하지 못한다. 우암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패이고 굴곡이 졌다면 강의를 듣는 이들이 그것을 피해갈 수 있는 지혜 얻기를 바라고 있다. 우암은 자신의 삶을 통해 젊은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그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우암은 올해 ‘조용기 인간학’의 마지막 강의를 하고, 강의 내용을 모아 세 번째 책을 낼 예정이다. 왜 그만 두느냐니까, 이제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
우암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어느 비 오는 날, 아버지가 형제를 부르더니 마루 끝에 서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처마 밑으로 손을 내밀라 했다. “아프냐?”“ 빗방울이 손에 닿은 것을 보고 아버지가 물었다. “아니요.” “그래 그럼 저 바위는 왜 저렇게 패였느냐?” 아버지 말을 듣고 보니 처마 밑에 받침바위가 움푹 패 있었다. “봐라. 빗방울도 저 단단한 바위를 뚫지 않느냐. 너희는 빗방울보다 더 강한 손가락을 가졌다. 그 강한 손가락으로 바위인들 못 뚫겠느냐.”
어려서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나 교육사업이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를 생각했다. 참으로 억지스런 일이지만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겼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끈기를 가르쳐준 것이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는 우암의 삶의 기둥이요 좌우명이 되고 말았다. 호로 삼은 ‘우암(愚岩)’ 역시 좌우명에서 따온 것으로 ‘어리석은 바위’라는 뜻이다.
“어릴 적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고 조금 커서는 경찰관이 되고 싶었고 더 성장해서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모두 권력지향적인 직업이죠. 그땐 힘이 없어서 빨리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길로 나갔더라면 나는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끈기를 갖지 못했을 것이며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1926년 곡성군 옥과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60평생 교육사업에 매달려온 우암이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 중 가장 비중 있게 하는 말은 “꿈을 꾸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는 “비관적인 사람은 숙명을 믿으나 긍정적인 사람은 숙명을 뛰어넘는다. 꿈이 있는 삶이란 미래를 희망하는 삶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노력하는 삶이다.”고 힘주어 말한다.
올해는 우암이 암담한 농촌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구국일념의 교육입국을 꿈꾸며, 하늘과, 사람과, 흙을 사랑하여 도의교육, 협동교육, 직업교육이라는 창학 이념으로 옥과농민고등학원을 설립한지 60년 되는 해다. 지난 2004년 옥산중학교가 제52회 졸업생을 끝으로 국가에 헌납 공립으로 전환하였으며, 옥과고등학교 제53회, 전남과학대학 제17회, 남부대학교 제7회 졸업생 배출로 총 4만여 명의 우암학원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했다. 지금은 우암학원의 전체교지가 10만여 평, 교사연건평 5만여 평의 매머드 학원으로 발전하였고, 옥과에는 우암유치원과 옥과고등학교, 전남과학대학을 합친 캠퍼스 타운과 광주 첨단과학단지 내에 남부대학교에는 석·박사과정의 일반대학원, 교육대학원 등 6개의 특수대학원이 있어 종합 명문사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희망은 마치 독수리의 눈빛과도 같다. 항상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먼 곳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이란 바로 나를 신뢰하는 것이다. 행운은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을 따른다.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마라.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다.’
꿈이 아무리 원대하고 자신의 능력이 탁월해도 이것을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가는 길이 힘들고 목표에 이르기 어렵다. 자신이 실제 가지고 있는 실력이나 지혜보다 천 배 만 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요즘은 문맹을 깨치는 교육이 아니다. ‘자신을 믿는 힘’을 주어 ‘행복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지식교육에서 영혼의 교육까지 파고든 우암 이야말로 진정한 ‘인간 농사꾼’이다.
 /사진=김기식기자 pj21@kjdaily.com


/만난사람·글=남성숙 논설주간 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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