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9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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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사회악 풍자 고발…정치의 正道 제시
광주매일신문·KCTV광주방송·광주시 공동기획
<55>무등산의 재발견-사람을 품은 산 (18)면앙정&송순(下)

암울한 시대 백성들의 피폐한 삶 고발시에 담아
면앙정서 사림세력 등 교류…사회담론 되짚기도

  • 입력날짜 : 2013. 01.25. 00:00
무등산은 주옥같은 가사문학의 탄생지다.국문학사에 높이 평가되고 있는 대문호들의 가사문학 16편이 바로 무등산 자락에서 나왔다. 특히 자연을 예찬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생활하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과 송순 ‘면앙정가’가 대표적이다.
면앙정 송순의 생애는 크게 3기로 나눈다. 1기는 성장 수하기, 2기는 사환기, 3기는 치사퇴유기다. 이 구분대로 하면 제2기 사환기가 가장 길었다고 볼 수 있는데 송순은 반세기라는 긴 세월동안 내외직을 두루 거치면서 비교적 순탄한 벼슬길을 달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물론 관료로서의 뛰어난 기량도 한몫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성실하고 원만한 인간성에 기인한 것이 더 컸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다고 정의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매사 정의감이 투철하고 비판이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흔히 중국 두보의 시를 ‘사회악을 풍자하고 고발하는 대표적 사회시’라고 일컫고 조선후기 박지원과 정약용의 시문학을 차종문학의 대표라고 하지만 면앙정의 시도 이에 못지 않게 비판적이다.

그가 살았던 사회가 암울했고 연이은 사화와 흉변, 붕당의 싸움으로 사회 변동이 심했던 때라 백성들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피폐했다. 이런 와중에 관리를 지낸 강직한 선비가 시에 아름다움만 노래했을 리 없다. 면앙정은 이런 사회상을 묵과할 수 없어 그의 현실관과 사회의식을 동원해 고발시를 쓰게 된다.



‘밥도 옷도 없는 가난한 할멈/책 덮고 눈물 뿌리며 오래도록 탄식하려니…/가혹한 정치가 사나운 범보다 더함을 알았네/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폭정과 악법이 벌떼보다 더 하구나/남편과 자식 형기 씌워 옥에 갇히니/매맞은 살가죽 다 썩어 냄새 난다/하늘에 외쳐 온종일 울 아래서 울어도/하늘조차 응함이 없으니 누굴 다시 믿을까’



잘 살던 어느 할멈의 집안이 잘못된 정치 때문에 몰락해가는 과정을 노골적이고도 신랄하게 고발한 시다. 주인공 할멈은 한 마을의 제일 가는 부자였다. 쌀을 사고 팔려는 남녀로 성시를 이뤘고 잔칫날은 온동네를 먹이던 집이 패가망신해 저녁에 한 칸 집 내놓아 서쪽 사람 빚을 막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과거 잘살던 집이 이렇게 패가망신한 이유가 뭔가. 그것은 가혹한 과세와 날마다 쉴새없이 내려지는 악법과 폭정 때문임을 작가는 밝히고 있다. 가혹한 정치가 사나운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고백. 너무 속아 불신의 늪이 깊은 백성의 마음을 잘 헤아린 시다. 면앙정의 의식은 백성이 잘살고 못사는 것은 결국 정치의 정도에 있음을 뚜렷이 제시한다.

그동안 가사문학의 개척자로 풍류를 즐기는 시객 정도로 밖에 알지 못했던 분이라면 이 대목에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송순의 현실투시나 고발은 아주 직접적이고 강했다. 사회나 정치를 개탄하는 시투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았다. 현실 구석구석을 조명하고 투시하면서 내재된 비리의 병균을 파헤쳐 시의 힘이 뭔지, 언론의 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면앙정의 이런 면면을 알고 정자에 오르자니 뭔가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면앙정 역시 다른 정자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정자 한 가운데 방이 있고 그 사방에 마루가 깔려 있어서 기둥과 방, 마루와 방문이 잘 조화되어 있다.

정자 앞에 우뚝 선 450여년 된 참나무는 면앙정이 직접 심었다니 살아있는 면앙정을 만난 듯 반갑다. 그동안 키가 32미터나 크고 가슴둘레만도 5.2미터나 되는 이 참나무는 잎이 유난히 윤기있고 바람이 솔솔 불 때마다 마치 향불을 피워놓은 듯 향기가 번져나와 면앙정 마루에 앉아 그 향기 맡는 이를 매료시킨다.

사실 국문학계에선 면앙정을 빼고 국문학사를 얘기하지 못한다. 면앙정이 지어진 후 이 정각을 중심으로 수많은 시가 작품이 생산되었으니 ‘호남지방 최초의 국문시사 가단이요, 깊이 보면 호남지방의 모든 시가의 원류적 총본산이다’는 평가다. 여기서 송순 이하 10여명의 작가가 참여해 한시 141편, 국문시가 1편, 단가 9편이 생산되었으니 말이다. 특히 송순이 여기서 지은 ‘면앙정가’는 ‘무등곡(無等曲)’이라고도 하는데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에 많은 영향을 줘 조선시대 호남시가의 원류가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 가사문학사에도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 않은가.

무등산을 맞대 바라보며 담양 고을 한 기슭에 자리잡은 면앙정이 하나의 가단을 형성할 정도로 창성했던 이유는 뭔가. 우선 이 누정의 주인이 송순의 인간적인 매력 탓 아닌가 생각된다.

송순은 여러모로 대인 관계에 탁월했던 오지랖이 넓었던 사람이었다. 온후한 성품에다 다정다감한 인물이었고 신의와 의리가 있었다. 벼슬이 높았으나 교유 관계에 있어서나 아랫사람에게 권위와 위신이 있었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상하귀천 차별이나 하박하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덕, 그것이 사람을 끄는 힘이었고 그의 인간미에 감복한 인사들이 자주 출입하면서 격조 높은 대화와 시를 지으니 자연히 가단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을 터.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정자의 주인이 다 그랬다.

또 하나, 자연과 인맥 그리고 더 중요한 것, 무등산 기슭에 솔솔 불어온 그 사림의 맥이 더 큰 몫을 했다.

면앙정을 출입했던 인사들은 거의 호남출신이었고 면앙정과 가까운 거리에 정자를 둔 사람들이었다. 면앙정과 친했던 박우는 50리 거리에 있었고 광주의 정만종은 30리, 임억령이 기거했던 성산 식영정과는 불과 20리 안팎이다. 출입이 잦았던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과는 40리, 임형수 임제와는 70여리, 사암 박순과는 50리, 제봉 고경명과는 30리, 창평의 송강 정철과는 20리 거리밖에 안되었다.

그러고보니 면앙정은 무등산에서 흘러온 정자군과 장성의 필암서원(김인후) 광산의 월봉서원(기대승)을 연결하는 중간기점에 있다. 그러니 자연 광산이나 장성지역의 선비들이 황룡강을 건너 식영정을 가면서 오면서 면앙정을 들렀을 것이 뻔하다.

거리도 거리려니와 인맥계보로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들이어서 면앙정을 고향 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박우의 경우 송순이 사사했던 박상의 계보이며 박우의 아들 박순이 송순의 문하생이 되었고 박순은 또 송순과 교유가 깊은 이황에게 사사한바 있는데 이들 인맥은 사사, 교유관계에서 비롯된다. 정만종과 송순의 교유 계기도 박상과 같이 사사했던 연고에서였고 정철은 송순의 문하생으로 임억령, 김인후, 기대승에게 공부했다. 따라서 이런저런 인간적 유대로 얽혀 자연스럽게 면앙정에서 어우러진 것이다.

특히 이곳의 자연 승경은 한번 와본 사람에겐 다시 오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풍류를 주었음에랴. 우선 전망의 규모가 크다. 면앙정도 스스로 이 일대의 전망을 ‘발 아래 산천은 아스라하고 눈앞의 하늘 땅 넓기도 하다’ ‘백리 밖 여러 산이 평야를 둘러서 있다’고 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자연에 취해, 풍류를 따라, 뜻이 맞아서 찾아들었다고는 하나 출입객의 면면이 격조가 있었고 이들 하나하나가 뛰어난 관리요 사상가요 개혁가였으며 문장자였음에랴. 이들의 ‘풍류’는 한낱 파적거리나 여가를 즐기기 위한 유희가 아니라 고상하고 품위가 있으며 사회담론을 담는 장으로 활용했다는 것, 이것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자신의 인생관과 자신의 학문, 도를 실어내 이 황폐한 나라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이 피폐한 사회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그리고 선비는 나는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가를 되묻고 토론한 하나의 아카데믹한 세미나장이었다고나 할까.

무등산 주변 정자는 참 대단하다. 위대한 누정들이다. 참 단단한 집회장소이다. 그리고 정말 정겨운 원두막 같은 곳이다. 세계 어느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작은 집들이 벨트를 이루며 나열돼있는 곳이 있을까. 세계 어느 장소가 이처럼 뜻있고 아름답게 쓰여진 곳이 있을까. 남도니까 가능하였다. 광주니까 가능하였다. 전라도 선비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글=남성숙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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