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목요일)
홈 >> 특집 > 수미산산악회 산행기

걸음 걸음이 수행, 집착과 욕심버리니 처처소소<處處所所>가 마음속 도량
광주전남수미산산악회와 떠난 진안 운장산·마이산

  • 입력날짜 : 2014. 07.29. 19:17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자리한 마이산은 두개의 암봉으로 각각 동봉(수마이산)과 서봉(암마이산)으로 돼있다.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文筆峰)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망망발초거추심(茫茫撥草去追尋)
우중산요로갱심(雨中山遙路更深)
첩첩히 우거진 수풀 헤치며 아득히 찾아 헤매 오르니
비 내리는 산은 높고 길은 더욱 아득하다

역진신피무처멱(力盡神疲無處覓)
단문풍수하선음(但聞楓樹夏蟬吟)
힘이 다하고 마음도 지쳐 갈 곳 찾을 수 없는데
다만 여름 깊은 숲 속에 풀벌레 소리만 들리네.

천지탑 모습. 왼쪽이 음탑이고 오른쪽이 양탑이다. 이 탑은 이갑종처사가 만 3년의 고행끝에(1930년경) 완성된 탑으로 타원형으로 돌아 올라가면서 쌓았다.


무상한 산행에서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한 때인가 보다.

비내리는 운장산의 정상을 향한 오름의 길은 수로(水路)가 되어버린 등산로를 따라 가는 빗 속 산행이었다. 원인과 결과가 끊어진 여여(如如)함 속의 등정이였기에 정상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었다.

힐링 산행은 대자연 속의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은 산행이다. 마치 수행을 함에 있어서 계율도, 선정의 고요함도, 심지어 지혜의 밝음까지도 집착하지 않음과 같다. 모두 뗏목에 불과할 뿐인지라 집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위 송(頌)은 12세기 중엽 중국 송나라 때 곽암선사(廓庵禪師) 심우도송(尋牛圖頌)의 첫 번 째 과정인 소를 찾고자 발심한 심우(尋牛)단계를 인용하여 표현한 것이다.

삶 그 자체가 수행의 연속이라 생각하면 산행 역시 삶 속의 行이기 때문이다. 사바세계를 살아가노라면 참마음을 상실하고 삼독심(三毒心)에 빠져 오욕락(五慾樂)을 탐하는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속에 초발심(初發心)하는 것을 곧 잊고 있었던 소를 찾아 나서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산행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회원들.


방복은명주(蚌腹隱明珠) 석중장벽옥(石中藏碧玉)

유사자연향(有麝自然香) 하용당풍립(何用當風立)

조개 속에 진주가 숨어 있고 돌 속에 벽옥이 들어 있듯이.

사향을 지니면 절로 향기로운데 무엇하러 바람 앞에 서려 하는가.



마이산 천지탑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이 송(頌)은 송나라 야부도천(冶父道川)의 선시(禪詩)로써 이를 보우국사는 “心卽天眞佛(심즉천진불) 이 마음이 그대로 부처이거늘 何勞向外覓(하노향외멱) 어찌 밖을 향해 쫓으려 하는가?”로 표현하였다. 탐심, 이기심, 분노, 적대감, 원망, 서운함, 편견, 선입관, 가치관 등으로 오염될대로 오염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닦으려 하지 않고 여전히 그릇된 방법의 무지함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중생들에게 던지는 자각의 말씀으로 수행의 필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결국 삶 자체가 수행이고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깨달으라는 말로써

“행주좌와간(行住坐臥間) 촌경막허척(寸景莫虛擲)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는 동안 한 순간도 헛되이 버리지 말라

방하만사착(放下萬事着) 로궁여철벽(路窮如鐵壁)

모든 일 다 놓아 버리기를 감옥에 갇힌 것 같이 하며

망념도멸진(妄念都滅盡) 진처환말각(盡處還抹却)

모든 생각을 다 끊어 버리고 끊었다는 생각마저 잊어 버려라

본래면목수(本來面目誰) 재거전몰석(擧箭沒石)

내 본래 모습이 무엇인고 간절히 의심해 가면

의단백잡쇄(疑團百雜碎) 일물개천벽(一物盖天碧)

의심덩이 문득 부서지고 한 물건이 하늘땅을 덮으리라.

막여무지설(莫與無智設) 역막생열역(亦莫生悅)

이 경계를 모르는 이에게 말하지 말고 기뻐서 날뛰지도 말고

수방견종사(須訪見宗師) 정기부청익(呈機復請益)”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가 얻은 바를 인가 받아야 한다.”고 1,000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고려말 보우국사는 수행의 중요성과 방법 및 자세에 대해서 이미 상세언급하였다.

수로가 된 등반로를 따라 雨中山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는 세가지 선택적 삶이 있다.

첫째는 선하게 사는 것이고, 둘째는 선하게 살되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이며, 셋째는 선하게 살되 좋은 결과를 바라지 않은 삶이다.

지금 우리가 간절히 필요로 한 것은 무엇일까? 맛있는 음식·승차감 좋은 승용차·넓은 집·비싼 옷만은 아닐 것이다. 부유하고 풍족하다고 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 마음까지도 성성적적(惺惺寂寂)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풍요롭고 자유스럽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갈애를 일으키지 않은 닦음이다. 또 조금 더 내려놓고 조금 더 비워내기 위해서는 기복(祈福)을 비는 행위로써 만은 이루워질 수 없음을 인식하는게 중요하다.

기복(祈福) 그 자체도 이미 욕심에서 출발하는 탐욕이 인(因)이 되기 때문이다. 복은 달라고 빌면 주워지는 것이 아니다. 질 좋은 삶을 위해서 필요로 한 것은 형식적, 일시적 방편의 닦음과 집착하는 갈애에서 벗어나 늘 닦는 노력과 인내하는 마음으로 바른 수행에 임하는 것이다. 하루만 닦지 않아도 먼지는 쌓이기 마련이니 수행의 일상화는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산행 입재를 올리는 수미산산악회 지용현 회장. (연석사에서)


수행에는 조건과 때가 필요없다.

어떤 이가 돈도 벌고, 자식도 다 키우고, 지위도 오르고 나면 그때 가서 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탐심은 만족의 끝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행은 우리의 생명 근원에 대한 회귀이며, 수행하는 이의 삶은 언제나 그렇듯 맑고 향기로움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 향내음은 나를 밝히고 주위를 환희 밝혀 존재들의 존재 의미를 일깨워 준다.



어떤 수행자가 붇다께 질문했다.

“세존이시여, 바라문들은 신에게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악행을 하여도 기도를 하면 죄를 사하고 천당에 갈 수 있는지요?”



세존께서는 그에게 되물었다.

“여기 깊은 연못에 돌을 던져 놓고 물가에 서서 ‘돌아 떠올라라’ 하고 열심히 기도한다면 그 돌이 떠오르겠느냐?”

“아닙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그렇다. 물에 빠진 돌은 물에 들어가서 건져내는 것이 옳은 방법이며, 그 돌을 아예 물에 집어넣지 않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이다.”고 하셨다.



모든 행위에는 인과가 있기 마련이다.

수행처가 어디 산뿐이리요, 처처소소(處處所所)가 모두 수행처이다. 자연속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과 자신이 별개가 아님을 느껴가는 산행속에 오르내리는 걸음이 생의 최초이자 마지막이 되고 한 발 한 발 내키는 걸음에서 느끼는 감촉이 모두 같지 않음이니 마음없이 걷는 길은 결코 수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생사재호흡(生死在呼吸) 난이보등하(難以保燈下) “죽고 사는 것이 숨 쉬는 데 있으니 오를 때에는 살아 있지만 하산할 때까지 살아 있을지?” 또 이 번 산행에는 참석하였지만 다음 산행에도 참석할 수 있게 될지? 버스에 오르는 순간 이번 산행에도 참석하였고 아직 살아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폭염 속의 여름에 바람은 있기도 하고 있지 않기도 한다. 없는 것 같으면서도 부채질을 하면 어느새 바람은 곁에 와있다. 바람을 만들면서 오를 8월의 팔공산 갓바위 산자락을 그려본다.


광주시 서구 치평동 산1번지 불교회관 1층
광주전남불교신도회 (062-385-1336)
※ 다음카페//광주전남수미산산악회


등반대장 허헌
허헌 (광주전남 수미산 산악회 산악대장)


kjdaily.com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