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같은 이빨이 서너 개 남았다
올해 아흔 셋, 장모님을 모시고
치과, 통증클리닉, 신경정신과, 안과를
한 바퀴 돌면 지는 해는 말이 없다
치아와 말수는 줄어들고
약봉지만 가을에 나락 가마니 쌓이듯 늘어 간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 깊어지는 외로움
세면대 유리컵 속에
퉁퉁 불은 틀니 한 벌,
생의 통점이 바로 선다
눈썹달은 요양병원 침대 맡에서
세월을 엮고 있다
긴가민가하는 기억을 멈춰 세우지 못해
다시는 돌아 볼 겨를이 없다
정신 줄을 붙잡으려는 그 자태에
마음마저 처연悽然해 진다.

<유해상 약력>
▲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주 문인협회 이사
▲서은문학회 이사
▲(주)금강엔지니어링 이사

▶박덕은 평설
유해상 시인의 시 ‘눈썹달’에서의 시적 화자는 93세 장모를 모시고 치과, 통증클리닉, 신경정신과, 안과 등을 한 바퀴 돈다.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장모, 말수가 줄어들고 약봉지만 늘어나는 현실, 유리컵 속의 틀니, 침대맡에서 세월 엮는 눈썹달 등이 서글픈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간결한 시어로 장모가 처한 노년의 비애를 그려내고 있다. 장모를 대하는 안쓰러움이 느껴지지만 함부로 감정을 발산하거나 확장시키지 않는다. 장모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평이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세면대 유리컵 속에/퉁퉁 불은 틀니 한 벌,/생의 통점이 바로’ 서서 장모의 하루하루를 낱낱이 짚어 간다. 틀니를 이용해 음식을 씹으며 건강을 챙기고 그리움의 통점 같은 자식을 만나며 살아간다. 틀니 한 벌과 생의 통점이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어 사유의 폭을 넓혀 주고 있다. 장모는 ‘긴가민가하는 기억을 멈춰 세우지 못해/다시는 돌아볼 겨를이 없’어 더욱 외롭다. 정신줄 붙잡으려는 장모의 그 자태가 마음을 처연하게 한다. 어느 누구에게나 와 닿는 보편성을 가져와, 독자의 마음을 울려 놓고 있다. 현실 속에서 만난 슬픔을 서로 공감하게 하면서, 사색의 공간으로 자연스레 이끄는 솜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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