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전 부리듯
와불님 귓속에 들어앉아 가부좌를 틀 것
절간 녹 슬은 구리종이 기억하는 벽력일 것
가슴이 온통
아무것도 아닌 것일 것
막무가내로 번지는 노을일 것
눈개승마가 기억하는 아지랑이일 것
그리하여
꽉 다문 입
무슨 말도 깜깜 들리지 않는
꼭두서니빛
먼 밤하늘까지 덮어씌울 것

<임해원 약력>
▲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임해원 님의 시 ‘꽉 찬 고요’에서의 시적 화자는 고요에 대해 시적 형상화를 해놓고 있다. 그것도 꽉 찬 고요란 어떤 세계일까. 딴전 부리듯 와불의 귓속에 들어앉아 가부좌 트는 것, 절간의 녹슨 구리종이 기억하는 벽력, 가슴이 온통 아무것도 아닌 것, 막무가내로 번지는 노을, 장미과 풀인 눈개승마가 기억하는 아지랑이라고 말한다. ‘절간 녹슬은 구리종이 기억하는 벽력’이라는 표현이 참 멋지다. 매우 크고 우렁찬 구리종의 소리와 그 소리를 기억하는 고요가 맞물리면서 깊이가 느껴진다. 우렁우렁 산허리를 돌고 돌아 뭇 생명들에게 설법하듯 뎅뎅 울렸을 구리종이 이제는 동안거에 들어간 스님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꽉 찬 고요는 꽉 다문 입이라고 말한다. 고요는 밖의 소란스러움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면의 소란스러움을 침묵으로 다독거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꼭두서니 빛으로 먼 밤하늘까지 덮어씌우는 것이다. 문득 우리가 가장 배워야 할 언어는 고요인 듯싶다. 이 시는 고요를 다양한 각도의 이미지로 구현해 놓고 있다. 낯설게 하기와 새로운 해석이 시를 감칠맛 나게 해주고 있다. 새로운 각도로 사물을 보고, 이미지로 그려내는 작업, 이게 시를 돋보이게 하고, 시의 특질을 갖추게 하는 작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선한 표현이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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