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이나 되었을까. 시골집에 갔다가 대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금이 간 시멘트 바닥 사이로 올라오는 가느다란 새순이 눈에 띄었다. 흙이라고는 없는 건조한 시멘트 바닥 틈새로 올라오는 여린 싹의 생명력이 가상하다고 생각하며 대문을 닫고 나왔다. 시골에서 지내다 보면 잡초의 생명력이 두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세 치 앞도 미리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한여름에 무릎을 싸매고 집안에 갇혀 지내게 될 줄 몰랐다. 길을 걷다가 인도의 경계석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대로 무릎 골절이 되어버린 것이다. 병원에서는 깁스를 해주며 한 달 반 동안은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정해 준 시간이 지나고도 외출하기는 힘들었지만 답답하기도 하고, 돌보지 못한 텃밭이며 비워둔 집이 궁금하여 보조기를 하고 친구와 시골집에 갔다.

대문을 열자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풀인지 나무인지 제법 크게 자란 식물이 풍성하게 가지를 뻗어 닫힌 문 뒤에서 버티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지난번에 봤던 여린 새순이 섰던 그 자리가 아닌가!

살아남기 위해 시멘트를 비집고 나와 키 대신 옆으로 가지를 치고 무성하게 일가를 이루며 버티고 있는 것은 들깨 한 알이 일군 한 그루 들깨나무였다. 대는 굵고, 잎은 작은 대신 짙은 녹색에 두텁고 단단했다. 가지도 많아 안정되어 보이고 다닥다닥 열매 맺을 준비도 하고 있었다. 올여름 같은 폭염에 사력을 다해 공간을 키우고 튼튼하게 자란 그 새싹이 들깨라는 것에 나는 고무되었다.

들판에서 가을걷이를 끝내고 나면 나머지 일감들이 집안으로 밀려온다. 거둬들인 밭곡식을 타작하고 소소한 잡곡들을 챙기느라고 농촌의 가을은 서리가 내려도 할 일이 많다. 버스에서 내리면 내 눈은 우선 들판에 사람이 남아있는지 확인을 한 다음에 집으로 간다. 들에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다면 그분은 내 어머니였으니까…….

식구가 많은 사람들은 마당들도 정리가 되어가는데 우리 집은 항상 일감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다. 집에서도 어머니가 안 보이면, 다시 어머니를 찾아가는 곳이 있다.

닝김이 밭 오백 평.

그 밭은 어머니의 들깨 밭이다. 초겨울로 가는 쌀쌀한 들녘에서 동산처럼 덩그렇게 쌓여있는 들깨 더미 옆에 누르스름한 수건을 머리에 쓰고 타닥타닥 긴 대로 깻대를 두드리고 있는 노인, 들깨가 내 어머니를 붙잡고 있었다. 그 깻대를 다 털어내야 어머니는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있다. 장갑도 끼지 않은 굽은 손으로 서리 내린 밭에서 혼자 들깨를 털고 있던 어머니. 먹을 것을 지천에 두고도 먹을 시간도 없다며 짭짤한 반찬 한두 가지 놓고 마루에 걸터앉아 드시고는 바쁘다고, 어서 먹고 일해야 된다고 하던 어머니는 꼭 소득을 생각하고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그만이었다. 모내기와 추수 때만 남의 손을 빌릴 뿐, 논농사의 대부분을 혼자서 했다. 그사이에 틈나는 대로 밭작물을 가꾸고 일을 놓지 못했다. 농토를 그냥 땅이 아니고 ‘저 좋은 땅’이라고 이름 붙일 때부터 어머니는 땅의 주인이기보다는 땅에게 저당 잡힌 몸으로 당신의 인생을 전답에 지탱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설득당하지 않고, 논과 밭으로 종횡무진 하는 어머니의 시간. 그러다가 드디어 병이 나기까지, 육신이 무너져버린 후에야 농사일은 끝이 나고 그 지독했을 어머니의 외로움도 끝이 났다.

들깨는 대부분 내 차지가 되었다. “깨끗이 씻어서 말렸으니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줘라.”고 했지만 어머니의 고생을 아는 나로서는 난감했다. 들깨 한두 되가 상품 가치가 큰 것도 아니어서 선물이랄 것도 없고 그냥 줘야 마땅했다. 오늘날처럼 들깨를 가치 있는 식품으로 여기지도 않은 시절이었다. 어머니를 잘 알아주는 사람이나 특별한 관계의 사람에게는 팔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알고 주문을 해 오는 사람도 있었다. 뿌려만 놓고 돌보지도 못했다며 미안해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어머니의 들깨는 오늘날로 치면 그대로 무공해 식품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정직한 농사를 알아주던 그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고맙다. 밭에서 털어 와서 또 집안에서 키질하고 씻어 말리던 어머니의 일감은 벼를 거두고 난 빈 들판처럼 허전한 어머니를 위해 동무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어머니의 몸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지친 노구는 오한이 나고, 구토로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야 우리 집으로 모셔오게 되는데 그때 어머니의 옷이나 몸은 온통 들깨 냄새에 절어있었다. 그러고는 식음을 전폐하고 몸살을 앓았다.

어머니가 떠나가신 지 다섯 해가 되었다. 주인도 떠나버린 빈집. 나는 들깨를 뿌려 본 적도 없을뿐더러 한동안은 들깨라고 하면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우리 집 사방에 흩어져 있던 그 한 알의 싹이 자라서 대문 앞에서 어머니의 빈 집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오경심 약력>
▲교육대학원 석사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2001)
▲광주문인협회, 곡성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 ‘눌러쓴 편지’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오경심 님의 수필 ‘어머니의 들깨’에서의 서술자는 어느 날 시골집에 갔다가, 대문 곁 금 간 시멘트 바닥 사이로 올라오는 가느다란 새순을 발견하고, 그 여린 싹의 생명력이 참 가상하다고 여긴다. 하루는 인도의 경계석에 걸려 넘어져, 무릎 골절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외출 금지 때문에 답답한 나날을 보내다가, 보조기를 한 채 시골집에 간다. 가 보니,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온 그 싹이 다름 아닌 들깨였다. 들깨가 매개체가 되어, 어머니와 들깨 이야기가 숨 가쁘게 전개된다. 밭에서 들깨를 일구던 어머니는 작대기로 깻대를 두드리며 쏟아지는 깨알 같은 땅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 텅 빈 가을이 타닥타닥 땅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진다. 들깨는 여름 내내 하늘의 말씀인 뙤약볕과 밤의 말씀인 별빛을 새겨넣으며 땅의 말씀을 완성한다. 그렇게 어머니는 땅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어머니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병이 나서야 들깨 농사를 그만둔 어머니, 지칠 대로 지친 몸 이끌고 아들집에 올라온 어머니. 옷이나 몸에 온통 들깨 냄새가 절어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다섯 해가 되던 어느 날, 찾아온 시골집 대문 앞을 놀랍게도 들깨가 홀로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의 삶을 지탱해 준 땅의 말씀이 깨알같이 가득하다. 들깨가 수필 도입부에서부터 마무리까지 곳곳에 등장하여, 통일성을 이뤄놓고 있다. 그러면서, 파고든 어머니의 외로움이 인상적이다.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이끌어 가는 솜씨가 아주 세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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