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장으로 지켜온
순창 남원 장수 삼거리 채계산
맞바라기하며 쓸어내린 이마 시리고
발꿈치 세워 어깨 한번 토닥이지 못해
외롭고 쓸쓸한 태초의 기억을 온몸으로 가둔다

그리움으로 마른침 삼키던 긴긴 기다림
그윽한 산국 향기에 별빛 삭혀내며
임인 양 품은 달빛 구름 바람 지나는 길목
옹색한 바위틈 앙가슴 진땀 쏟을 때
옆구리 휘감아 오른 오백팔십 계단의 심박동이 뛴다

그대와 나 웃음 만개한 사랑의 통로
국내 최장의 찬란한 출렁다리로 그 눈빛 뜨겁고 높아
솟구치는 욕망과 기쁨이 편백 숲에 허리를 펴면
한 시절 깊이 참아온 불같은 열정이
은밀한 꿈자리로 하늘 높이 진홍색 나래를 편다

<고영숙 약력>
▲‘대한문학’ 시, 수필 등단(2007)
▲대한문학 작가회 회원, 대한문학 작가상 수상
▲광주문협 회원, 한국문인협회 곡성지부 부회장
▲서은문학 회원, 섬진강권문학연대 회원
▲작품집 : ‘한가한 날의 독백’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고영숙 님의 시 ‘채계산 출렁다리’에서의 시적 화자는 채계산의 출렁다리에 눈길을 주고 있다. 채계산은 적성강변 임동의 매미 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한 여인이 비녀를 꽂은 채로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하는 모습과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그 여인의 ‘외롭고 쓸쓸한 태초의 기억을 온몸으로 가둔’ 아픔이 출렁거리는 듯하다. 무슨 아픔이 있었길래 발꿈치 세워 그리움의 어깨 한 번 토닥이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움으로 마른침 삼키던 긴긴 기다림’이 달빛 아래 흥건하다. 아직도 그 기다림은 끝나지 않은 것일까. ‘그윽한 산국 향기에 별빛 삭혀내며’ 기다림은 출렁출렁 흐르고 있다. 기다림이 얼마나 지독하길래 바람 지나는 길목마다 서성이는가. ‘옆구리 휘감아 오른 오백팔십 계단의 심박동’이 뛰는 그 긴박한 쿵쿵거림이 심상치 않다. 기다림의 끝자락에서 드디어 ‘그대와 나 웃음 만개한 사랑의 통로’가 만들어진다. 기다림의 시간 속으로 성큼 들어온 그리움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시절 깊이 참아온 불 같은 열정이’ 만개한 것이다. 얼마나 바랐던가. 기다림 끝에서 ‘은밀한 꿈자리로 하늘 높이 진홍색 나래’를 펴고 있다. 이 시는 이미지 구현과 낯설게 하기가 조화롭게 자리하면서, 입체적이고도 자연스런 시적 형상화를 이뤄놓고 있다. 출렁다리를 통해 다채로운 감성의 세계가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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