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은퇴 이후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전석홍 원로시인이 농경사회의 향수어린 시집을 펴냈다.

한국 농경사회를 지탱해온 농기구를 소재로 한 ‘농기구열전’(서정시학刊)이다.

이 책에는 농촌에서 자라 농기구와 친숙하게 지낼 수 있었던 시인의 농촌생활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에게 있어 ‘농기구열전’은 이력서이자 농촌의 역사이며 근대화 과정의 한 발자취다.

순전히 육체노동에 의존해 농사를 지어야 했던 옛날, 지게와 삽 등 농기구들은 사람과 한 몸이 돼 땅을 일구고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들 농기구는 오늘날 현대식 농기계로 대체돼 농업박물관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옛 유산이 됐다.

책 속 ‘농기구 연작시’는 단순히 농기구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고달픈 삶을 내면적으로 증언하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올바른 삶의 방향이 어떤 것인지 인식해보고자 한 것이다.

전 시인은 이러한 옛 시절 추억이 깃든 농기구에 얽힌 갖가지 사연을 70편의 연작시로 풀어냈다.

그는 농기구를 단순히 무생물의 도구가 아니라 영혼이 깃든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시인은 “농기구는 삶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오는 데 지팡이가 돼줬다. 거기에는 농촌생활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농민들의 피와 땀, 손때가 서려 있으며 혼이 박혀 있다. 농기구를 보면 무생명의 도구가 아니라 저마다 표정을 지닌 하나의 생명체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농기구열전’은 전 시인의 문학적 체취와 서정적 깊이가 느껴지는 시집이다.

전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눈 내리는 겨울밤 사랑방 호롱불 아래 모여 앉아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아련한 그리움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문학평론가인 김재홍 경희대 교수는 서평에서 “전석홍의 농기구 연작시들은 표면적으로는 농기구를 노래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농민들의 고단한 생활상을 반영한 것이다”며 “심층적으로는 역사적 삶의 어려움을 통해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제시하는 철학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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