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4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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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 입력날짜 : 2017. 10.12. 19:00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숨겨진 진실이 베일을 벗고 있다. 경찰이 처음으로 TF팀을 꾸려 5·18당시의 역할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권력의 정점에 있던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과 신군부의 ‘자위권’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들이 새로 밝혀졌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학생 시위로 무질서와 혼란이 극에 달해 군의 개입이 없어서는 안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 보고서는 광주가 평온한 일상으로 치안이 안정적이었으며, 경찰과 학생들은 일정한 룰이 있었고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에서 대화 채널이 가동되고 있었다고 했다. 군 자체 판단에 따라 5월18일 오후 4시부터 광주 진압작전이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덧붙여 최초 무기 실탄 피탈은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30분쯤 나주경찰서 남평지서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계엄군의 도청 앞 발포가 이뤄진 21일 오후 1시 전까지는 시민군의 총기 발사는 없었던 셈이다.

그동안 군 당국은 보안사가 보존 중인 ‘전남도경 상황일지’를 근거로 21일 오전 8시 나주 반남지서, 오전 9시 남평지서에서 무기를 탈취했기 때문에 자위권을 발동해 발포했다고 주장해 왔다.

전남도경 상황일지 기록은 국회 5공 청문회 등에도 그대로 인용됐으나 경찰은 조작된 것으로 봤다. 과거 내부 문건 작성 시 ‘전남경찰국’이라고 표기했지만 이 문건은 ‘전남도경’이라는 표현돼 있을 뿐더러 한자 역시 ‘경(警)’ 대신 ‘경(敬)’으로 잘못 쓰였다.

또 다른 핵심인 북한군의 개입설도 거짓으로 재차 확인됐다. 당시 130여명의 정보·보안 형사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23곳에 정보센터를 촘촘하게 운영해 사실상 광주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수백명의 북한군이 활동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식 밖의 얘기라는 것이다.

전남경찰청은 지난 4월부터 5개월 동안 ‘5·18민주화운동 경찰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 TF팀’을 구성해 수기로 작성된 ‘전남경찰국,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상황’ 문서와 감찰 기록, 일선 경찰서 기록, 근무자 증언 등을 토대로 처음 공식보고서를 냈다.

지금까지 전두환씨는 회고록 등을 통해, 극우세력은 5·18 왜곡·폄훼 책동을 끊없이 자행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역사의 진실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발버둥치며 부정할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진정한 참회를 해야 한다. 5·18 광주의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질 그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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