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2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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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가 품은 국립광주박물관 이야기]국립광주박물관 특별전
湖南의 금석문, 탁본으로 만나다
‘남도 불교 천년의 증언 - 남도불교문화연구회 기증 탁본전’

  • 입력날짜 : 2020. 06.03. 18:01
영암 엄길리 암각매향비(1404년)
탁본은 동아시아에서 오랜 세월 동안 행해진 복제 방법으로, 글자나 무늬가 새겨진 면에 종이를 붙이고 먹으로 찍어내는 방법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 탁본을 통해 먼 곳이나 먼 옛날의 글씨와 문장을 가까이 접하고, 이를 통해 과거의 예술을 배울 수 있었다.

지난달 11일부터 막을 올린 국립광주박물관 2020년 특별전 ‘남도 불교 천년의 증언, 남도불교문화연구회 기증 탁본전’은 이러한 탁본을 통해 호남 지역의 다양한 불교 금석문을 소개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2018년 남도불교문화연구회로부터 기증받은 탁본 177건 210점 가운데, 호남지역의 불교 역사를 보여주는 주요 유물 45건 91점을 공개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물들은 멀게는 9세기부터 가까이는 20세기까지, 1천여년 이상의 호남지역 불교 역사를 보여주는 금석문의 탁본들이다. 대상은 사찰의 사적비부터 덕이 높은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고승비, 다양한 불교미술품의 부조와 명문, 매향비까지 다양하다.


전시 1부 ‘천년 고찰의 기록-사적비’에서는 조선 후기 이후 건립된 호남 지역의 다양한 사적비 탁본을 소개한다. 사적비는 어떤 일이나 사업의 전말을 기록한 비를 가리키며, 우리나라에서는 늦어도 신라 하대인 8-9세기경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후기 사찰에서는 사찰의 창건 내력과 연혁을 기록한 사적비의 건립이 유행했는데, 이를 통해 사찰의 오랜 역사와 함께 당시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는 정통성을 강조하게 됐다. 조선 후기 사찰의 사적비 건립은 호남 지역에서 시작돼 전국적으로 유행했는데, ‘순천 송광사 사원사적비’는 그 시초가 되는 작품이다.
순천 송광사 사원사적비(1678년)

송광사 사원사적비는 1678년 건립된 것으로, 홍문관 수찬 조종저가 글을 짓고 낭선군 이우가 썼으며, 낭원군 이간이 전액을 썼다. 이 세 인물은 조선 후기 당시에 여러 고승비의 건립에 함께 참여했다가, 송광사 사원사적비의 건립을 계기로 사적비의 건립에도 참여하게 됐다.

송광사 사원사적비는 유학자가 비문을 짓고 당대의 명필이 비문의 글씨를 쓰는 등, 당시 고승비 건립의 격식에 따라 사찰의 사적비를 건립한 첫 번째 예다. 이후 조선 후기 사찰에서 세워진 많은 사적비들이 이러한 격식을 따르게 돼, 실로 조선 후기 사찰 사적비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전시의 2부는 ‘고승들의 행적-고승비’라는 주제로, 신라 하대인 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고승비와 승탑의 탁본을 소개한다. 돌아가신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은 신라 하대 8-9세기경부터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 이 당시 중국에서 들어온 선종불교의 확산과 함께 널리 유행했다.

선종불교는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법맥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므로, 돌아가신 스승을 높이 받들고 묘탑과 비를 세우는 것이 유행했다. 이 시기에 고승비는 왕사, 국사 등 높은 스님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었고 왕의 승인을 받아야만 세울 수 있었다. 고승비의 건립은 왕에서부터 귀족, 당시의 명문장가, 명필, 재력이 있는 지방 유력자 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불사였다.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영탑비’는 보조선사 체징(804-880)의 비로, 체징의 묘탑인 창성탑과 함께 884년에 건립됐다. 보조선사 체징은 우리나라 선종을 일으킨 도의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염거(?-884)의 제자다. 837년 입당해 선을 학습한 후 840년 귀국해 고향에서 교화활동을 했다. 858년 장흥의 가지산에 가지산파 산문을 개창하고 도의를 1세, 염거를 2세, 자신을 3세로 칭했다.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영탑비(884년)

보조선사영탑비의 비제 ‘신라국무주가지산보림사보조선사영탑비명’에는 우리나라에 전하는 비 가운데 최초로 ‘탑비’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비문 내용에 따르면 김영이 글을 짓고 김원과 김언경이 글씨를 썼는데, 앞부분은 김원이 구양순체의 해서로, 7째줄의 ‘선’(禪)자 이하는 김언경이 왕희지체의 행서로 썼다. 한 비문에서 두 인물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전시 3부인 ‘깨달음의 모습-불상, 탑, 석등, 종’에서는 불교미술품에 새겨진 다양한 부조와 명문의 탁본이 전시됐다. 불교미술품에 새겨진 명문들에는 부처님에 대한 공양물을 만들기 위한 당시 사람들의 마음가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열망, 편안한 삶에 대한 기원 등 다양한 마음들이 깃들어 있다. 또한 이러한 불교미술품을 조성할 수 있도록 도운 중앙의 정치권력에서부터 사찰의 높은 승려, 일반 민중과 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이름이 기록돼 있어, 계층을 넘어선 종교적 열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불교미술품의 명문은 그 제작자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 고대의 불교미술품에는 제작자의 이름이 새겨지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시대가 내려가면서 장인들의 자의식 성장 및 철저한 기록의 관습과 함께 불교미술품의 조성 명문에 제작자의 이름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에는 제작자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이 널리 행해지면서, 불상, 불화, 종, 석조물 등 다양한 불교미술품의 장인 계보를 추적할 수 있게 됐다.

3부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동종 탁본은 이러한 불교미술품의 제작자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광주 원효사 동종’은 명문을 통해 1710년 담양 만수사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을 만든 장인으로 ‘김성원’이라는 이름이 확인되는데, 이 인물은 18세기 초 전라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대표적인 주종장(鑄鐘匠)이다. 김성원은 1694년에 실상사 종을 제작한 김
광주 원효사 동종(1710년)
상립의 아들로, 활동 초기에는 종의 명문에 ‘김상립 아들 김성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점에서 아버지인 김상립 또한 당시 상당히 영향력 있는 장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민중들의 염원-매향비’라는 주제로, 호남지역 해안가 곳곳에 세워진 매향비를 조명했다.

매향비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향을 묻는 ‘매향(埋香)’의식을 행하고 이 내용과 참여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비다.

매향 의식은 향나무를 땅에 묻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침향으로 변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렇게 얻어진 향을 먼 미래에 미륵보살이 내려오면 그 법회에 참여해 공양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미륵하생경’에 기반하는 신앙으로 추정된다.

‘미륵하생경’에서는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7천만년 후에 미륵보살의 용화세계가 도래하면, 그 세상은 풍족하고 안락한 생활이 지속되고, 이때 미륵보살의 법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는 먼 미래에 올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믿음이라 할 수 있는데, 매향비가 건립된 시기와 장소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해안가에 집중된 것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전라도 지역 해안가는 왜구가 창궐해 민중들의 생활이 고통스러웠으며, 이러한 현실의 고통과 불안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매향 의식이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에 남아 있는 15여기의 매향비 가운데 10기가 전라도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점 또한 이와 관련해 주목된다.

김영희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사>
또한 매향비는 향도, 결계, 보와 같은 조직이 주도했는데, 여기에는 높은 관료나 승려 뿐 아니라 일반 민중이 폭넓게 참여한 것이 특징적이다. 매향 신앙 자체가 일반 민중 사이에서 신앙되는 형태였다는 사실이 추측되는 부분이다.

‘영암 엄길리 암각매향명’은 다듬어지지 않은 암벽에 글씨를 새긴 것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된다. 연도를 ‘석가여래 입멸 후 2349년’이라고 기재한 점이 독특하며, 1404년경의 조성으로 추정된다. 또한 명문에는 ‘용화초회 공양을 원한다’는 내용이 있어 ‘미륵하생경’에 기반한 신앙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와 연계한 학술대회 ‘남도 불교 천년의 증언, 현장과 전망’는 12일 오후 2시부터 국립광주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된다. 학술대회에서는 남도불교문화연구회 회원 및 관련 연구자들의 발표와 토론이 준비돼 있다.

전시는 8월9일까지 계속되며, 오는 29일 일부 교체전시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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