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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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물은 소리 없이 또 한 번의 여름을 준비한다 - 수필 박연식

  • 입력날짜 : 2020. 08.17. 19:11
물 따라 길 따라서 남쪽 끝 해남으로 문학기행을 간다. 해남은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풍요는 넓은 지식층이 형성되는 토양이 됐고 우리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숱한 시인들의 배출로 이어진다. 땅의 끝이라는 지리적 상징성은 서정성과 저항성, 자연주의와 전통성 등 다양한 문학의 모태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곳이 처음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은 이곳을 여름휴가지로 선택하곤 했다. 광주에서 거리도 적당하고 모래사장이 넓고 완만해서 사고의 위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솔밭이 울창하고 고즈넉해서 최고이다.

‘문학이 있어 행복한 사회, 문인이 있어 밝고 건강한 사회’라는 사명과 소명의식이 있기에 불볕도 무섭지 않고 달려온 곳이다. 여름 한철, 귀중한 땡볕이 있기에 오곡이 풍성하게 무르익어가듯이 문인들도 한때의 열정이 있어야 문학이 익어 가리라 믿는다.

한국작가연대 김용언 이사장님의 ‘좋은 글쓰기 요령’ 세미나에 참석했다. “나는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라는 목표를 가졌다면 성공한 삶이란다.

“신선한 글감을 선택해야 호기심을 자극하고 공감력을 높일 수 있으며, 자기만의 안목으로 바라보면서 소재를 선택해야한다. 전통적인 작법에서 탈피해야한다. 매체의 변화에 적극 대처하라. 상상력을 극대화하라. 나무에 달린 사과를 보면서 우주를 생각하고 통통 튀는 공을 생각하고 피어나는 꽃을 생각할 수 있어야한다. 많은 체험을 하면서 사물에 대한 관심을 가져라.”

결국은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체험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글의 씨앗을 찾으러 최남단 ‘땅끝’까지 오지 않았는가.

‘해남’ 하면 ‘대흥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서울, 경남, 부산, 등지에서 오신 문인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세밀하게 답사를 한다.

선조 37년(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한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처영스님에게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해남 두륜산에 두라고 부탁하신다. 그 외진 곳을 택한 이유는 “반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종통(宗通)이 돌아갈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신대사가 입적하자 제자들은 시신을 다비한 후 묘향산 보현사와 안심사에 부도를 세워 자리를 봉안하고 영골은 금강산 유점사 북쪽 바위에 봉안했으며, 금란가사와 발우는 유언대로 대둔사에 모셨다. 이리하여 서산대사의 법백은 대둔사에서 이어지게 되었고, 일제 때 오늘날과 같이 큰절 대흥사로 고정되었다고 한다.

대흥사에 가면 천불전의 분합문짝에 새겨진 창살무늬를 보아야하며, 대웅전으로 오는 돌계단 양쪽 머릿돌의 야무지게 생긴 도깨비 상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흥사 여러 당우들에 걸려있는 현판글씨는 대단한 명품으로 조선후기 서예의 집약이기도 하단다.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며, 표충사는 정조왕의 친필이고, 가허루는 창암 이삼만, 무량 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란다. 그러나 서예에 대한 예비지식과 안목 없이는 느껴질 그 무엇이 없을 것 같아 두렵다.

다음은 강진 백운동 정원을 찾았다. ‘백운동 정원’은 조선 현종, 숙종 때 처사 이담로 선생이 조성했다. 1812년, 다산 정약용은 월출산행을 마친 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당시에 막내제자가 이 담로의 6대손이라는 인연 덕택이었다. 다산은 하룻밤 묵은 백운동 정원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한다. 그 후 제자인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자신의 시 13수를 한데 묶어 백운동첩을 만들게 하여 유명하다.

광활한 평야의 한 복판에 뜬금없이 우뚝하고 험해 보이는 주능선을 경계로 북쪽은 영암월출산, 남쪽기슭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엔 백운동 정원이 있다.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과 함께 호남의 3대 전통 정원으로 손꼽힌다. 고즈넉한 정취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별서정원인 백운동 정원은 입신양명에 뜻을 두지 않고 숨어살기 위하여 살림집 근처에 지은 사랑채 같은 별장이다.

다음 장소인 정약용과 제자 초의선사가 즐겨 마셨다는 녹차 밭에서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하고 긴 이별의 시간을 보냈다.

“해남 땅 끝에 왔다. 살아온 날들까지 함께 왔다 저녁파도소리에 동백꽃진다”란 어느 시인의 글이 입술에서 맴돌고 있다.

“문학이 있어 행복하고 문인이 있어 밝고 건강한 사회”라는 슬로건으로, 우리는 또 한 번의 여름을 준비할 것이다.


-약력-
▲‘한국수필’ 등단(2000)
▲ 아시아 서석문학 시, 수필 우수상 수상(2016)
▲ 저서 ‘함께 밟은 페달’, ‘서간문집’ 출판
▲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광주문인협회, 청미래 회원
▲ 광주문인협회 주최 전국시낭송 대상 수상(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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