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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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콘택트 시대 생각의 전환 / 김선기

  • 입력날짜 : 2021. 01.25. 19:45
김선기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장/문학박사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 지난해에 이어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급기야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송두리째 흔들렸고, 사람과의 관계는 온통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는데, 작금에 처해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생신을 맞으신 늙은 부모님을 찾아뵙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심지어 사람 만나기가 두렵고 무섭기까지 하다. 설령, 길에서 우연찮게 지인을 만나더라도 불끈 쥔 주먹부터 들이밀어야 하는 웃지 못 할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흔히 말하는 ‘언콘택트 시대’를 살고 있다. 모두가 다 아는 말이지만, 언콘택트(Uncontact)는 비대면 또는 비접촉으로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접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콘택트’의 단어가 주는 첫인상 때문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언콘택트에 대해 잘못된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언콘택트는 서로 단절되고 고립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 선택된 트렌드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일이다.

불안과 위험의 시대, 우린 더 편리하고 안전한 콘택트를 위해 언콘택트를 받아들이는 것이지,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 없어지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란 것이다. 우리가 가진 연결과 접촉의 방식이 바뀌는 것일 뿐, 우린 앞으로도 계속 사람끼리 연결되고 함께 살고 일하는, 서로가 필요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적 진화, 산업적 진화, 사회적 진화는 결국 인간의 진화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 우린 콘택트와 언콘택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연결되고, 무탈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런 욕망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쌓여오고 진화되었던 흐름이다. 가령 은행 직원을 대면하지 않고 휴대폰 하나로 금융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나, 쇼핑몰에서의 전화주문 등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불과 수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맞은 언콘택트는 어찌 보면 예견된 미래였던 셈이다.

때론 우연한 계기가 세상을 바꾸는 단서를 준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한국사회를 역대 급 불안에 빠지게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통해 한국인들과 한국 사회가 얼마나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지를 전 세계인에게 보여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빨리빨리와 끈끈함은 지극히 한국적인 속성이다. 가장 심화된 콘택트 사회였던 한국 사회에 코로나19는 언콘택트를 더 증폭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의도치 않은 우연한 계기가 변화하는 흐름의 속도를 가속화시킨 것이다.

일상이 바뀌면 욕망도 바뀐다. 또 욕망이 바뀌면 일상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언콘택트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욕망을 바꾸고, 사회구조를 바꾸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류는 감염을 피하고자 ‘언콘택트 시대’로 강제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 디지털 문명으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상식과 기준, 그리고 생각의 틀을 다시 짜야 ‘언콘택트 시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에 세계 문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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