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열 조선대학교 명예교수·광주유학대학 학장

12월3일 자정 무렵,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필자에게 둘째 아들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받아보니 “윤석열이 미쳐버렸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나의 첫 응답은 너무나 담담하게 “국회에서 해제 요구하면 된다.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라는 것이었다. 어떻든 궁금증이 발동하여 거실의 TV를 켰더니 경찰들이 국회 정문을 폐쇄하는 모습과 완전무장한 비상계엄군이 국회 본관으로 진입하기 위해 창문을 깨트리는 모습 등이 방영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5·16, 12·12, 5·18을 지켜보면서 살아온 나의 눈에 비친 경찰, 특히 비상계엄군의 모습에서 전혀 ‘비상계엄군’ 같은 ‘비상함’과 ‘살기등등한 긴박함’ 같은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상부의 명령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온’ 모습이거나 심지어는 ‘무엇을 위해 나온 것인 줄도 모른채’ 자다가 동원된 것 같은 맥 빠진 모습 속에 오히려 그들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훨씬 기세등등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21세기 한국판 해프닝으로 기록될 비상계엄은 불과 2시간30분 만에 국회의장이 주재한 국회 본회의에서 ‘해제요구결의안’이 통과되고 ‘계엄군은 국회에서 즉각 철수해 달라’는 의장의 말 한마디에 계엄군이 마치 썰물 빠지듯 철수함으로써 종료되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정리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우느냐 하는 것인데 이를 두고 여야 간에 입장차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먼저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하며 대통령이 자신의 진퇴를 우리당(국민의힘)에 일임했다는 논리를 내세워 여당과 정부가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은 ‘내란범’이므로 즉각 탄핵하고 구속·수사해야 하며 법률적 절차에 의해 국정이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옳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여당의 주장은 전혀 사리(事理)에 맞지 않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본다. 첫째, 이번 사태가 군(軍)을 동원해 헌정질서를 무력화시키려 한 ‘정변’인 이상 이는 ‘내란죄’가 분명하며,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내란죄의 경우 즉각 처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현행범으로 구속·수감돼야 한다고 본다. 자진 출두한 하수인 김용현 국방장관은 구속·수감하면서 명령권자인 대통령은 그대로 두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에 위배되는 것이다.

둘째, 한덕수 총리 역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할 자격이 있는지 따져야 하며 국무회의에서의 발언과 처신에 따라 그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대통령의 권한은 마음대로 누구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법적으로 ‘유고’ 또는 ‘사고’에 처해야 순위에 따라 직무가 대행될 수 있는 것이다. 한동훈 대표의 담화를 들으면서 명색이 법을 공부해 검사를 했다는 사람의 발상으로는 믿기 어려웠다.

넷째, 오랫동안 정치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필자의 생각으로는 행정부를 구성하는 총리와 각부 장관 대부분이 계엄령의 선포를 의결하는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그 ‘정변’이 실패한 이상 행정부의 권한은 정치적으로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이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모든 권력을 통제·행사하는 것이 오히려 순리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의 행사에는 합법성(合法性)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정당성(正當性)이 있느냐 하는 것인데, 윤석열과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행정부 구성원은 이미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생경제가 어렵다는 소시민들의 한숨소리가 그치지 않는 연말에 느닷없는 정변을 일으켜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경제를 혼란스럽게 만든 윤석열 일당을 일벌백계하는 것만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굳건히 세우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무이자 사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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