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 기상청장

우리나라 사계절은 24절기로 나뉜다. 절기는 태양의 황도상 위치에 따라 구분 짓는데, 그중 가을은 입추(立秋)에서 시작해 입동(立冬) 전까지로 정의 내려진다.

올해는 8월7일에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를 맞았다. 일교차가 커지기 시작하는 처서(處暑)는 8월23일, 흰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는 9월7일이었다.

절기와 관련된 가을 속담도 여럿 있다. 그중 ‘추분을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 숨는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추분(秋分)은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때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호우가 급격히 줄어들고, 벌레들은 겨울나기를 준비하기 위해 땅밑으로 숨으며 가을의 성숙기에 접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올가을은 달랐다. 추분을 한참 넘기고서도 연일 비가 쏟아졌고, 특히 10월 들어서는 32도를 웃도는 이상고온 현상이 발생했다.

10월 기온으로는 기상관측 사상 최고점을 기록하며 가을인지 한여름인지 구분이 안 가는 날을 되풀이했다.

우렛소리가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는 속담은 문자 그대로 옛말에 그칠 뿐이었다. 기후변화 등 여러 요인으로 계절에 변화가 생기면서 절기상으로만 가을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가을은 정확히 어떻게 정의 내리면 좋을까? 기후학적으로 풀어보자면 가을의 시작은 일평균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을 의미한다.

즉 일평균기온이 20도보다 낮아야 가을로 인정되는데, 광주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평균 기온이 21도 안팎을 유지했던 만큼, 사실 가을보다는 여름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일교차’가 있다. 가을이 되면 여름철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었던 덥고 습한 기단이 물러나고 차고 건조한 기단이 상공을 덮는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은 태양빛을 그대로 받아내고, 기온은 이에 따라 쉽게 좌우된다.

낮에는 비교적 따사로운 일사의 영향 아래 기온이 빠르게 올라가게 되고, 밤과 새벽 사이에는 뜨거운 열기가 지구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일교차가 매우 커진다.

1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일교차는 빼놓을 수 없는 가을의 기상·기후학적 특징이다.

이렇게 낮밤의 기온차가 심한 환절기에는 우리 몸은 달라진 외부 공기에 적응하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로 생체리듬이 흐트러지면서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신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질병에 쉽게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생체학적으로 보자면, 가을은 심·뇌혈관계 질환 등 각종 질병에 대한 건강관리 주의보가 발령된 시기라고 표현하면 적절할 것이다.

이에 기상청에서는 ‘뇌졸중가능지수’, ‘감기가능지수’ 등 환절기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생활기상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표출되는 지수단계에 맞춰 외출 시기와 옷차림 등을 적절히 잘 조절하면 환절기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완연한 가을이다. 굳이 정의 내리고 분석하려 들지 않아도 가을 복판에 다다랐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기후학적 가을은 점점 우리 곁에서 멀어지는 중이다. 기후변화로 가을뿐만 아니라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이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을의 시작일이 과거보다 9일 늦춰지며, 절기상의 가을과 기후학적 가을은 그 간극을 점점 넓혀가는 중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거두어 갖는 계절’이라는 가을의 어원을 되새겨본다.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한 해 결실이 풍성히 갈무리되는 계절, 자연의 아름다운 선물인 가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후변화 가속화를 막기 위한 범국민적 행동에 우리 모두 동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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