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6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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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화기 함께 한 근대화 유산 명성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흔적을 찾아서…

선교사들 풍토병 피해 고산지대 수양관 지어
세계각국 양식 12채 수려한 자연경관 어울려
내셔널 트러스트 ‘꼭 지켜야 할 문화유산’ 선정

  • 입력날짜 : 2014. 06.23. 20:34
세계 각국의 건축물이 모여 있는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는 영국 시민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가 ‘꼭 지켜야할 자연 문화유산’으로 선정하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 지정이 추진중이다. 현재 이 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건물 12채가 남아있다.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산17번지, 떡을 찌는 시루 모양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라 해 왕(王)자를 붙였듯 가파른 산길을 서너 시간 오르면 평평하게 너른 땅이 펼쳐진다.

여기에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세계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오두막 12채가 있다. 긴 세월을 견뎌낸 건물들은 그 자체로 역사의 빛을 발한다. 수십년 해발 1천21m 왕시루봉을 지켜온 선교사 유적지다.



◇이국땅에 온 선교사 린튼가문

1890년대 조선시대는 지금의 아프리카보다 더 가난하고 병들던 암흑기 였다. 이때 여러나라 선교사들이 들어온다.

이들은 전국에 수많은 병원을 짓고 헐벗은 많은 환자들을 치료했다. 가난하고 못 배운 백성들을 위해 많은 학교를 지어서 문맹퇴치에도 앞장섰다. 당시 문맹률은 99%에 가까웠다.

대표적으로 유진벨 선교사는 1895년에 우리나라에 왔는데 4대째 100년이 넘도록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유진벨 선교사는 호남지역 수피아-숭일-영흥-전주신흥기전 학교를 설립하고 문명 퇴치에 일생을 바쳤다.

2대 월리엄 린튼(인돈)은 3·1절 만세 시위운동 선언문 작성을 배후 지도하고 일제 식민지하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등 국권회복에 앞장선 공로로 건국훈장애족장에 추서됐다. 대전 한남대학교를 설립했다.

3대 휴린튼(인휴)은 해군장교 출신으로 6·25전쟁 인천상륙작전 참전용사이며 아내와 함께 순천지역에 결핵 진료소와 요양원을 개설했다. 전국 결핵퇴치 운동을 전개해 국민훈장과 호암상을 받았다.

4대 존린튼(인요한)은 5·18광주민주항쟁 현장 통역자로 외신기자들에게 통역을 했다. 북한을 40회 넘게 방문해 의료장비, 의약품을 지원했으며,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현재 연세대 교수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지리산 왕시루봉에 1962년 수양관을 다시지은 휴린튼 선교사의 아들 존린튼(인요한) 교수가 현장에서 건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개화기 선교사들의 모습.
◇세계건축양식 300m이내 집합

어려운 시절 선교사들이 1921년부터 지리산 꼭대기 높은 곳에 집을 지었던 이유는 말라리아와 이질 등 우리나라 풍토병 때문이다. 호남지역에서는 어린 자녀들까지 67명이 숨을 거뒀으며 코잇트 선교사의 2살·4살 남매는 이틀 간격으로 사망했다.

이에 본국에서의 귀국 종용을 물리치고 병원균이 서식을 못하는 고지대인 800m 넘는 노고단에 52채의 수양관을 건축했던 것이다. 1936년 성경 번역의 주역은 레이놀즈 선교사로 역시 이곳에서 주도적으로 이뤄졌다.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근현대사 유적으로서 가치가 큰 것이다.

수양관은 1940년대초 일제의 강탈을 계기로 훼손되기 시작했고, 해방 후 한국전쟁과 태풍 등으로 대부분이 망가졌으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휴린튼이 왕시루봉에 미국·영국·호주·노르웨이·일본 등 각각의 나라 건축양식으로 지난 1962년 다시 지어 현재 12채의 수양관과 가옥들이 있다.

전쟁 뒤 민둥산이 던 왕시루봉에는 잦나무와 전나무를 심어 녹화했고 서울대학교 연습림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식목과 산림보호에 기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토속적인 구조기술과 시공수법을 통한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주목받고 있고, 반경 300미터 이내에 세계 각국의 건축물이 모여 있는 곳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이와 관련 문화재 위원들이 추천 의견서를 보내오는 등 문화재 등록 지정이 진행중이다.



◇‘꼭 지켜야할 자연 문화유산’ 선정

1890년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라는 시민단체가 제10회 한국내셔널 트리스트 보전대상지 공모전에서 왕시루봉 유적지를 ‘꼭 지켜야할 자연 문화유산’으로 선정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국내셔널 트러스트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경우는 보존을 하는 게 원칙이며 국립공원 내에 있다고 해도 보존하기 위한 운동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건축물 중에는 노르웨이 스토바(stova) 주택양식과 일본에서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록된 갓쇼즈쿠리 건물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건축물들이 목조건물이기 때문에 날로 쇠락해지고 있어서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개화기 현대사를 이끌었던 지리산 유적지는 온 국민의 유산으로 지키기 위해 올 3월에 서울프레스센터에서 한국내셔널트러스와 (사)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 보존연합이 효율적 관리를 위한MOU(상호협약)를 체결했다.

보존연합 관계자는 “선교사들의 숭고한 마음과 정신, 우리민족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지리산 유적지를 보존하는 것이 후손들이 지켜나가야 할 의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왕시루봉 동쪽 아래턱에 울창한 숲 속에 집들이 보인다. 아래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백운산과 마주보고 있어 수려한 경관은 비길 데 없이 좋다. 봄엔 철쭉이, 가을엔 정상 그 넓은 초원이 온통 억새밭으로 변한다”며 수려한 자연환경도 치켜세웠다.

/구례=김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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