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8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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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大地가 품어낸 순백의 영혼들…길 위의 소소한 인연으로 만난 행복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61> ‘맑은 영혼이 머무르는 大地 ’ 네팔
오래된 2001년 8월의 행복 단상

  • 입력날짜 : 2015. 09.15. 19:44
박종석 作 ‘사랑콧에서’
네팔(Nepal)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Annapurna) 및 히말라야 산군을 보기 위해 사랑콧(Sarangkot) 전망대까지 인적 없는 숲길을 홀로 4시간 넘게 걷는 중이다. 한적한 숲속 외딴 곳에 있는 어느 집에서 청년이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권한다.

그래서 짜이 한 잔을 대접 받는데 또 바나나 몇 개를 내놓는다. 그런데 대화 중 차고 있는 시계를 달라고 해서 필요한 물건이라 “미안하다”고 했는데 찻값과 바나나 값을 무리한 금액으로 요구한다. 적절한 돈을 지불했는데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기분이 상해서 따졌는데 그 청년이 낫을 들고 와서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아찔한 순간이다. 혼자인 나는 기지를 발휘해 경찰을 부르겠다며 태권도 자세를 취하고 기합을 넣었더니 그 청년은 기겁하고 도망친다.

위기의 순간보다도 네팔 서민의 이미지에 심기가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이 무거운 걸음으로 오른다. 그런데 전망대에 가까운 어느 허름한 집에서 또 짜이 한잔 마시고 가라고 적극 권유한다. 그래서 미끼를 또 던지는가 싶어 ‘돈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더니 “괜찮다”며 들어오란다.

다시 한 번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응대한다. 다행하게 불안이 없는 믿음의 짜이 한 잔을 달콤하게 대접받는다. 그리고 전망대에 올랐으나 한 시간 이상 기다려도 안개에 가려서 설산은 보지 못하고 내려오다 그 집을 다시 방문해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다.

마네즈의 집에서
가족 구성원은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장녀 사라후티(Saras woti), 장남 마네즈 프레야(Manoj Pariyar), 동생 샤갈 프레야(Sagar pariyar) 등. 다섯 가족이 단란하게 미소를 머금고 생활한다. 그러나 가장은 삼남매를 낳은 후 다른 여자와 살고 온 식구가 오갈 데 없어서 친정어머니 집에서 얹혀산다. 어머니는 영양결핍으로 하체가 약해 거동이 불편하지만 재봉틀 하나에 의지해서 옷 수선 수입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었다.

대화중에 초등학교 6학년인 마네즈 프레야가 자기가 그린 그림 20여점과 나무판에 그린 그림을 자랑삼아 내놓았는데 문득 토방 큰 돌에 오리를 못으로 파낸 암각화도 보인다.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열심히 그려 유명한 화가가 되라”고 했더니 그림 그릴 종이가 없단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께 도화지 살 돈을 요구했을 때 거절당하고 졸업 후 자동차 수리공이 되길 원하셨는데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미술부 활동을 했으니 제재(制裁)가 많아 1년 후 중단했다.

60년대 당시 만해도 그림 그리는 행위는 빈곤의 상징이자 배부른 자의 허세로 인식된 시기로 나의 어린 시절이 저절로 각인(刻印) 됐다. 그의 사정(事情)과 형편은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실천하도록 했고 한편으로 이기적 고민의 양산(量産)을 예상할 해질 무렵에 하산한다.

다음날 일찍이 지름길을 택해 사랑콧 전망대에 다시 올라서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한 히말라야의 산군들을 조망하고 내원의 트레킹을 꿈꾸며 몇 시간동안 스케치하다가 내려와 마네즈 프레야 집에서 민박하기로 결정하고 오후를 넘기다보니 저녁 식사시간이다.

마네즈 어머니는 항아리 밑바닥에 있는 쌀을 모두 비우고 씻은 쌀물은 물소에게 먹이로 준다. 딸이 허름한 부뚜막에서 대나무 대롱을 입으로 불어 불을 지핀다.

‘동터오름을 보기 위하여’
서로 매운 연기에 눈물을 짜내며 1시간을 넘게 밥을 짓는다. 성찬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손님을 위해 아낌없이 베푸는 마음이 한 없이 고마웠다. 단 몇 시간의 인간적 교감은 황금 한 덩어리의 행운보다 더 큰 가치를 저절로 느끼게 한다. 그날은 네팔 사람의 이미지가 반등(反騰) 돼 인간애가 풋풋하게 느껴진다. 물질적으로 궁핍하지만 가족들의 얼굴엔 천사표 미소를 엿볼 수 있었고 그 어떤 세상의 불만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둥지였다.

새벽 2시까지 온 식구와 함께 짧은 영어지만 사람냄새를 느낀다. 엄마의 소망은 그 집에 작은 식당을 차리는 것과 두 아이들의 공부를 지속하는 희망의 실낱같은 염원이 담겨있었다.

다음날 새벽이다. 아래 계곡에서 60세 외할머니가 힘겹게 떠온 도자기 항아리 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정돈된 화단은 아니지만 제일 예쁜 꽃 한 송이를 따서 물 컵 안에 띄우고 흙벽 홈에 놓인 시바신에게 바치고 기도한 후 모든 가족들의 머리에 꽃송이를 올려두고 이마에 붉은 색을 발라주며 정직한 삶과 행복을 간절히 기도한다.

맑은 산소마냥 경건하고 순결한 의식이 나의 가슴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듯하다. 해발 1천592m의 청명한 새날이 훈훈한 마음으로 배급된 물 한 컵에 양치질과 고양이 세수를 한다.

딱 그만큼의 항아리 물은 하루의 식수로 사용되는데 한 방울의 물도 금쪽 같이 아끼며 버릴 물을 다시 끓여서 식기 세척용으로 사용한다. 열악한 환경 때문에 철저하게 근검절약하고 어쩔 수 없지만 하루 한 끼로 생명도 생활도 절제해야한다.

백납병(百衲屛) 병풍 같은 하얀 설산과 맑은 공기, 청초한 꽃, 새소리, 침묵에 잠긴 녹색풍경, 따뜻한 햇살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환경이다. 아침식사는 짜이 한 잔뿐이다. 사라후티는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축제가 있어서 전날 꽤 먼 거리의 계곡에서 깨끗이 몸단장하고 새벽 5시에 출발하면 아래 도시 학교를 9시에 도착할 수 있단다. 손님의 단잠을 깨우면 실례가 된다며 산 아래 학교로 가고, 나는 아침에 마네즈 프레야와 함께 하산을 서두르며 이틀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지는데 마네즈의 어머니는 내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불편한 다리를 지탱하고 서서 손을 흔든다. 먼 거리에서 그들을 보며 생각해본다. 소중한 만남은 이해타산 없는 순수한 배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마네즈는 나를 위해 포카라 시내숙소까지 바래다주고 스스로 타잔이라며 오를 때 4시간이상 코스를 1시간30분만에 하산한다. 숙소에 도착해 이것저것 필요한 생필품과 몇 가지 선물을 사주고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한다. 그 다음 여행을 위해 인도 국경선까지 20여시간 동안 차 안에서 뒤척이며 약간의 빵과 시골 정거장에서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다보니 포카라 사랑콧의 풋풋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그리워진다. 영혼이 맑은 사람의 인연이 주는 여운 때문이었다.


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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