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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박사의 뮤지엄 읽기] (4) 박물관, 하드웨어가 먼저다

[윤태석 박사의 뮤지엄 읽기] (4) 박물관, 하드웨어가 먼저다
“사립박물관, 가치재<價値財>로 인정될 때 비로소 발현되는 그 찬란함”
  • 2018. 02.21(수) 18:54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연구실장, 문화학 박사
박물관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다. 개인이 만든 사립박물관·미술관(이하 사립박물관)에까지도 여러 혜택과 적지 않은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사립박물관(사립대학박물관 포함)에 공적자금이 공식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또복권의 수익금으로 조성된 복권기금을 시원으로 한 이 지원은 여러 형태의 국고지원으로 확대돼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OECD회원국은 물론 북미나 유럽 등 뮤지엄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지원정책으로 해외 박물관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러한 지원은 1984년 제정된 ‘박물관법’이 1991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하 박물관미술관법)으로 전면 개편되면서 ‘진흥’이라는 목적을 분명히 함에 따른 것이다. 이 법에 의하면 먼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는 사립박물관의 설립을 돕고, 문화유산의 보존·계승 및 창달과 문화 향유를 증진하는 문화 기반 시설로서 지원·육성해야 한다(제13조). 지자체장은 그 소유의 유휴 부동산 또는 건물을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라 박물관 등으로 용도 변경해 활용할 수 있으며, 박물관을 설립·운영하려는 자가 유휴 부동산 또는 건물을 대여할 것을 요청하면 유·무상으로 대여할 수 있다(제19조). 또한 국가나 지자체는 박물관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국유재산법’, ‘지방재정법’ 또는 ‘물품관리법’에 따라 박물관에 무·유상으로 양여·대여하거나 그 자료의 보관을 위탁할 수 있으며, 자료의 보관을 위탁할 경우에는 예산의 범위에서 그 보존·처리 및 관리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제23조).

경남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전경.
끝으로 국가나 지자체는 설립 계획의 승인을 받은 사립박물관에는 이에 필요한 경비를, 등록한 박물관에 대해는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각각 보조할 수 있으며, 국영 수송 기관에 의한 박물관자료의 수송에 관해는 운임이나 그 밖의 요금을 할인하거나 감면할 수 있다(제24조).

이외에도 적지 않은 혜택을 여타의 법에서도 명시하고 있다. ‘지방세특례제한법’, ‘산지관리법’, ‘조세특례 제한법’, ‘개별소비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관세법’, ‘한국전력공사 전기 공급약관’, ‘도로표지 제작·설치 및 관리지침’ 등이 그것인데, 이를 통해 지방세 및 대체산림자원조성비, 전기료 등의 감면, 부가가치세 면제, 공익법인 박물관에 대한 상속세·증여세 징수유예 등 직·간접적인 진흥의 근거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다수의 광역과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는 박물관미술관법을 근거로 조례를 제정해 촘촘한 지원으로 관내 박물관활성화를 돕고 있다.

한편, 복권기금은 지원초기 소장품 도록발간, 전시 기획, 교육프로그램 운영, 수장고 보강, 홈페이지 제작·운영 등에 방향이 맞춰졌었다.

화순 다산미술관 전경.
그러나 이는 서민들에 의해 조성된 복권기금이 이들보다는 형편이 나은 박물관에 지원된다는 것과 지원의 방향이 박물관의 사유재산 확충에 해당한다는 감독당국의 지적에 따라 지금은 지원이 중단됐다.

현재는 국고로 전환됐으며, 지원금의 최종 목적지가 박물관이 아니라 그곳을 경유하는 형태인 학예사 및 교육사 인건비 지원사업,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체험 기획 및 참여경비 지원사업, 소장품 데이터베이스 지원사업 등으로 바뀐 상태다.

이중 교육·체험 지원사업은 자율학기제, 창의적 체험활동, 길 위의 인문학, 문화가 있는 날,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등과 같이 비슷비슷한 이름으로 지원되고 있다.

한국박물관협회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위탁을 받아 2007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학예인력 지원사업의 경우 지난해까지 11년간 연 1천424개관에 1천786명을 지원하며 224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적지 않은 세금이 아닐 수 없다.

타 사업과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사업, 유사지원성 혜택까지를 합산한다면 기 천억은 족히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지원으로 치장된 화려한 수치와는 달리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점도 적지 않다.

강원 원주 치악산명주사고판화박물관 수장고 모습.
그것은 먼저, ‘막대한 세금을 투입했는데 박물관은 그만큼 발전했는가?’이다. 결론은 100% 동의하기 어렵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세금 면제 및 감면, 징수유예, 전기요금 감액, 도로표지판 설치 등 혜택의 종착지가 박물관에 있는 진흥책은 분명히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직접지원의 형식임에도 박물관이 유통의 경로 상에 있는 지원은 획일화된 일회성 지원사업이기 때문에 자생력, 지원의 본질, 정체성 등의 측면에서는 항구적인 박물관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관 정체성과 미션의 퇴보는 간과할 수 없다. 박물관은 기본적으로는 소장 자료가 같을 수 없으며, 운영자, 규모, 여건, 이용층과 대상 역시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철학과 활동도 상이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개별관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지원은 상당수의 박물관에게 맞지 않는 옷을 보급하는 것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우선 현실이 혹한이니 몸에도 맞지 않는 옷을 일단 받고 볼 수밖에 없고, 그 옷에 억지로 몸을 맞추다보니 현실과 괴리된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될 뿐 아니라 성과는 물론 투명하고 합리적인 추진도 어렵게 된다. 결과적으로 박물관에게 일회적, 규격화, 단순화, 획일화의 부작용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림대박물관 꿈다락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
따라서 어설픈 지원은 세금낭비, 정체성의 퇴보, 만족도 저하 등 그 누구에게도 유익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이제, 박물관을 지원의 경로로 활용하거나, 박물관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식의 근시안적 지원에 대해 재고하고, 먼저 하드웨어에 방향을 맞춘 새 프레임을 짤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박물관을 살리고 콘텐츠 보존과 활용을 통한 양질의 대국민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박물관의 존재가치는 자기 정체성을 근간으로 한 다양성의 발현에 있다. 이에 더해 지원당국은 박물관이 휴전선을 지키는 것과 같은 가치재(價値財·merit goods)라는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

가치재의 기능은 숭고성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존경받아야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립도 수집한 자료를 근간으로 설립과 개방을 통해 사회적 기부를 실행한 공공적 자산인 것이다. 따라서 지원처는 소장자료, 관리·보존과 활용, 이용자에 방점을 둔 실제적이고 현장성이 강한 지원책을 찾아야한다.

김포다도박물관 군인대상 문화가 있는날 프로그램.
예컨대 도난 및 화재방지시설, 수장고 보강 및 운영, 이용자를 위한 전시실과 교육시설의 현대화, 장애우 및 노약자를 배려한 편의시설 등은 마땅히 정부가 책임져야 할 대상이다.

이를 충분히 보강한 다음에 현행과 같은 소프트웨어 지원에 관심을 갖되 그것이 각 관의 사정에 맞춰진 것이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박물관의 운영자 또한, 지원금이 고귀한 국민의 혈세임을 인식하고 공공재로서의 공익적 기능에 앞장서야한다.

현 정부는 ‘사람이 있는 문화’와 ‘지방분권’을 중요 국정지표로 내세우고 있다.

공공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산간벽지나 농림어업지역 도처에 소박하게나마 자리 잡고 있는 사립박물관들은 지방분권에 문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인프라임이 분명하다. 이를 국가가 운영한다면 얼마나 많은 공적자금이 투여될지 생각해보면 이들의 헌신과 기능이 보다 존귀해 보일 것이다.

더 이상은 ‘국고지원’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물 새는 강의실에서 우리 아이들이 불안하게 체험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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