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과 닻은 물론 활죽 하나도 배에 따라 붙이는 방법이 다르다"고 강조하는 마광남씨는 "한 척의 모형선을 만들기까지 대략 15일이 소되지만 원형복원과 고증을 위해 투자한 시간을 합하면 수년이 걸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진=오종찬기자 ojc@kj

"통일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 장군이 바다를 제패하는데 사용했던 군선은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 저항을 적게 받도록 설계됐으며 군선간 전투가 용이하도록 기울었다가 바로 설 수 있는 복원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심한 연구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이같은 장보고함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전통 목선의 재현을 꿈꾸며 수십년째 외길을 걷고 있는 한선(韓船)분야 기능전승자 마광남(62)씨의 바램이다.
그가 목선 제작에 처음 발을 내딛은 때는 지금으로부터 35년전인 지난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대를 갖 제대한 마씨는 단지 생업수단으로 완도조선소에서 목선제작일을 했다. 당시만 해도 고기잡이배를 중심으로 삼대선과 김채취선, 연승어선 등 대부분의 배들이 목선이었던 까닭에 제법 수요가 많았으며 마씨가 받던 급료도 다른 업종에 비해 적지 않았다.

하지만 FRP선이 등장하면서 점차 목선의 자취가 사라지더니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주문이 뚝 끊겨 다니던 조선소도 문을 닫고 목선기술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마씨 또한 생계를 위해 고기잡이배를 타고 원근해를 오가는 것은 물론, 전혀 생소한 방앗간 일도 해보았지만 목선제작에 대한 애정은 거둘 수 없었다. 비록 판로는 없지만 기회가 온다면 언젠가는 전통목선을 고스란히 살려보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95년 봄 우연히 입수한 선박에 관한 책자를 보다가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접하고 깊은 회의에 빠진 그는 직접 목선을 제작하고 운행했던 세대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한선제작에 뛰어들었다.
그가 비록 모형선이지만 다시 대패와 톱을 잡게 된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故이종옥·강성렬 두 스승의 영향도 적지않다. 유년시절 마씨는 30㎏이 넘는 연장통을 지게에 실어나르며 스승들로부터 전통 목선의 제작비법을 전수받았는데, 그분들이 사용했던 톱과 줄, 대패, 끌 등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스승들이 물려준 것은 녹슬은 연장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한선제작에 필요한 재주와 조상의 얼을 마씨에게 남겨주었다. 하지만 마씨 혼자 간직하라며 물려준 기술은 아니었기에 항상 마음 속에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었다.
결국 마씨는 조상들의 뛰어난 목선제작기술을 후세에 남기고 점차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한선의 모습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모형선 제작에 뛰어들었다.
거룻배, 고깃배, 소금배, 나룻배 등 일반 민선으로 흔하게 쓰이던 우리 전통배를 기억 속에서 꺼내 모형으로 만들어갔다. 하지만 이 일이 생각처럼 술술 풀리지만은 않았다. 모든 공정을 손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더딜 뿐만 아니라 전통기법을 서술한 책은 단 한 권도 없고 오로지 구전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해안가를 찾아다니면서 귀동냥을 하지만 그에 따른 경비도 만만치 않다. 몇몇 행정기관에 모형선을 납품하고 대금을 받고 있지만 연구비로 모두 소진하다보면 생계는 뒷전이다.

이 때문에 아직 엄두를 내지는 못하지만 생전에 고향 완도에서 그가 만들어낸 모형선을 전시할 수 있는 '선박 박물관'을 갖는게 꿈이라고 넌즈시 얘기한다.
"우리 전통 배는 외관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눈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못하고 투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실제 바다에서 기능은 외국의 배들이 따라오지 못하지요."
마씨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모형선을 보고 속내를 알지도 못하면서 투박하다고 말하는 문외한들에게 꾸지람 대신 이처럼 자상한 설명으로 대신하면서 다시 연장을 잡는다.

김경석기자 pius97@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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