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역 언론사는 광주·전남지역 기관장 및 예비 수장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바로 6·4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쥔 당선자들이다. 이들 중에는 초선의 인물도 있지만 상당수는 재선·3선이 주류를 이룬다.

향후 4년을 지켜볼 일이지만 저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누구 못지않은 깨끗한 동량이 되겠습니다.” 라며 청렴을 강조한다. 재선·3선의 당선자들은 4년 전, 8년 전에도 똑 같은 말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거 때면 되풀이된 일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약속이든 아니든 진실보다 그럴 듯하게 윤색된 각종 공약들이 유권자를 솔깃하게 했다. 오죽하면 재야(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함석헌 선생은 “정치란 선악을 판단하는 종교행사가 아니라, 덜 나쁜 사람을 골라 뽑는 과정이다”며 “그래야 ‘더 나쁜 사람들’이 점차 도태돼 종국엔 ‘덜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바뀌어 갈 것 아니냐”고 말했겠는가.

자신의 약점과 허물을 숨기기 위해서든, 강점이나 장점을 부풀리기 위한 것이든 간에 거짓은 인간의 교만과 허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하고 불가피하게 진실의 탈을 써야만 하는 상황도 있지만 탐욕을 배태한 교활한 위선은 속는 상대뿐만 아니라 속이는 자신 스스로도 피폐하게 만든다.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된 ‘나의 투쟁’이란 책을 쓴 히틀러도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잘 속는다.’고 했다. 독일과 유럽을 철저하게 파괴했던 히틀러 스스로는 이 책을 통해 큰 거짓말을 지어낸 장본인이 된 꼴이 됐다.

반면 조선시대의 명망 있는 공직자로서 오성과 한음이 있다. 오성은 백사 이항복이며 한음은 명보 이덕형이다. 이 두 사람은 선조와 광해조에 걸쳐 명재상으로 나라에 크게 공헌한 문신으로 선조시대의 임진왜란·정유재란과 광해시대의 난정을 지혜롭고 슬기롭게 극복하고 나라를 지켜낸 정치가였다.

이항복은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국방을 맡은 병조판서를 다섯 차례, 이덕형도 병조판서를 두 번이나 맡았다. 이로 보아 전란 시에 이들의 역량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당시 나라가 전란 중이었기에 탁월한 위기관리의 행정관리 능력이 요구됐다. 두 사람은 행정관리 능력에도 뛰어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그 역량을 십분 발휘했던 것이다.

최근 광주·전남은 매우 어려운 시기이다. 과거 오성과 한음시대의 임진왜란, 정유재란시기에 못지않다. 광주시와 전남도의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등 악화일로다.

특히 광주시의 재정자립도는 5년새 6%포인트 이상 떨어지면서 30%대로 추락하는 등 살림살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전남도 역시 재정자립도 전국 꼴찌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안군의 재정자립도는 7.6%로 전국 군 단위에서 꼴찌다. 함평군(8.1%), 고흥군(8.8%), 강진군(9.3%), 곡성군(9.4%), 완도군(9.6%), 해남군(9.7%), 장흥군(9.9%) 등의 재정자립도도 10% 미만으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광주 광산구를 제외한 4개 자치구와 전남 나주시와 신안군, 진도군 등 16개 시·군은 자체 재원으로 공무원 급여도 충당 못 하는 수준이다. 세월호 참사, 장성 요양병원 화재참사 등으로 정서적으로도 여간 침체돼 있지 않다.

이러한 어려운 현재의 세태 속에 과거 역사의 발자취를 회상해 보고 싶다. 선조 때의 임진왜란, 정유재란과 광해군의 폭정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나라를 지켜낸 보국재상이었던 오성과 한음 두 정치가가 새삼 마음 속 깊이 되새겨진다.

논어에서 말하기를 정(政)은 정야(正也)라고 했다. 이는 “정직한 마음으로 정직한 판단을 하고 정직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와 같은 세태야말로 오성과 한음 같은 청렴하고 올 곧은 지도자, 가짜가 아닌 진짜 지도자가 요구된다.

청렴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을 호도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방식으로 진실의 가면을 이용하는 가짜와 다르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여전히 진실을 흉내 내는 거짓이 더 진실처럼 행세하고 있다. 진짜가 영락없이 가짜처럼 보이는 것은 진짜처럼 분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처럼 만들어진 조화가 생화보다 더 진짜 꽃처럼 인식되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화장한 얼굴이 맨 얼굴보다 예쁘고, 소설이나 영화가 현실보다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언론사 방문에 한창인 6·4 지방선거 당선자들을 보니 화장을 하지 않은 민얼굴이다. 4년을 지켜볼 일이지만 ‘청렴은 당당한 자신과의 약속’이며, ‘정(政)은 정야(正也)’임을 가슴속 깊이 되새겨 알찬 4년의 행보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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