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기자협회체육대회가 끝나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폿집에서 자리를 했다. 딸이 고3인지라 화두는 당연히 학교의 현실이었다. 모 사립 고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연신 학교 현장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을 괴로워했다. 학생 지도 방법에 대한 무기력함,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무질서를 개탄했다. “‘교실의 위기’가 두렵고, 서글프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19세기는 ‘무기가 강한 나라’가 세상을 지배했다면, 20세기는 산업화에 따른 ‘경제가 부강한 나라’가 세계를 좌지우지 했고, 21세기는 ‘후세 교육을 잘한 나라’가 세계를 이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가장 위기에 처한 곳이 바로 학교라고 하니 정말 문제다.

온통 학교 안팎이 학생들의 교사 경시, 학교 폭력, 교사들의 분열, 학부모들의 과도한 개입, 교육 행정조직의 관료화, 학력 평가제도 및 사교육의 문제, 잦은 대입제도의 변경, 지역 간 불균형 등 도무지 정상인 것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교육 현장은 문제투성이다.

오죽하면 “교육현장에 참스승보다는 직업인으로서의 교사만 있고 학생은 많지만 제자는 적다.”는 말이 나올 정도겠는가. 유태인 탈무드의 “공부 하려거든 도서관에 가라. 학교는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만나는 곳이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 세상에는 지식을 가르치는 ‘머리의 학교’가 있고, 기술을 가르치는 ‘손끝 학교’도 있으나 마음을 가르치는 ‘가슴 학교’는 없다.’고 한탄했던 근대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찌의 지적이 새삼스럽다.

학교는 학력도 책임을 지지만, 또한 인성 전반에 걸친 전인 교육을 하는 곳이다. 학교 교육 현장은 교육에서 학생에게 어떤 권리를 주는 것보다 주어진 권리를 잘 행사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미완성의 인격체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반듯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그런데도 학교 현실은 체벌, 학생인권, 학습권 선택 등으로 아직 자기 절제력이 부족한 미성년자에게 무제한 적으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자기 절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허용해도 어려움이 뒤따르는데, 아직 성숙치 못한 학생들에게 어른들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권한, 자율 등을 과다하게 부여한 건 아닌지 우려가 된다.

실제로 며칠 전 광주에서 야기된 사례를 보자. 일부 학교가 교내 질서 등을 위해 학생들에게 중앙현관 출입을 자제했다. 이유인 즉 A고는 대학수능을 앞둔 3학년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위해, B고는 방문객에게 청결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C고는 학생의 장난으로 출입문이 파손되거나 학생들이 다칠 염려가 있어서, D고는 청소와 등교 지도를 위해서였다. E고는 학생권이 침해될 수 있어서, F고는 자기주도적 학습권 보장을 위해, G중은 학생회가 정한 수칙에 따라, H초등학교는 등하교 질서를 위해서가 이유였다.

그런데도 한 시민모임단체는 “학생인권조례에 보장된 학생들의 자유권과 평등권에 위배된다.”며 광주시교육청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학생들이 중앙 현관을 이용하지 못해 학생 간 교류나 이동수업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과거에는 상상을 못할 일이다.

학생인권조례 내용은 어떤가. 체벌금지, 교내외 집회허용, 임신·출산과 성적(性的)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두발·복장의 자유, 휴대전화 소지자유, 소지품, 일기장 검사금지 등 조항 거의 모두가 학생의 권리만 일방적으로 담은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미국 뉴욕시의 학생권리장전은 61개항 중 24개가 학칙 준수, 시간 엄수, 다른 학생의 학습 권리 존중 등 학생의 책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영국 교육부도 1999년부터 학교현장에서 ‘노터치 규정’을 시행해 왔으나 2011년 학교폭력과 교권확립을 위해 이 규정을 완화하고 새 지침을 마련해 교사들은 교실에서 적절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고, 학생동의 없이 소지품 검사를 실시하여 술과 마약을 적발할 수 있도록 했다.

선진국 중에서도 학생인권규범을 만든 곳이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오로지 학생 권리만 나열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생의 인권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권리와 더불어 이를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품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반듯한 인격체를 이루려면 도덕성, 권리에 따른 의무감,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학생이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가르치고 반듯한 인성을 갖춘 인물로 성장하도록 교사들을 성원·격려하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다.

교권은 교사의 지위나 권위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올바르게 지도하기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지고 학생의 미래를 걱정하며 학생들의 의무와 책임, 권리 의식을 균형 있게 가르칠 수 있도록 일선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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