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는 선물에 민감하다.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물을 받았으면 이에 상응해 답례를 한다. 그래서 경기불황에도 선물 시장 자체는 좀체 줄지 않고 있다. 다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할까?

일부 순수한 선물이 변질돼 뇌물이나 부정청탁의 대가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조사비용으로 수백만원, 수천만원이 전달되고, 막대한 선물로 환심을 사려는 경우도 있다. 금품수수는 아니지만 상식에 벗어나는 선물을 통해 청탁을 하고 민원을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대표적인 적폐(積弊)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수단은 일명 김영란법. 정확한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고 유예기간을 거쳐 2016년 9월28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공무원이나 언론인, 사립학교 종사자 등이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 일정액 이상의 선물을 받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대상자만 약 300만명에 이른다.

대상이나 적용금액을 놓고 논란도 있었지만 골격은 확정됐다. 이제 시행령을 확정하는 것만 남겨두고 있다.

이 법이 시행돼도 금품수수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도 있지만 제대로만 지켜질 경우 금품이나 향응이 크게 줄어들 개연성은 많다. 한번 걸리면 명예회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농수축산물이 포함되면서 관련사업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다.

농수축산물은 선물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대표적인 소비재이기 때문이다.

실제 농수축산물 선물은 실용성이 높고 가격대비 가치가 크다는 장점 외에도 농어촌을 돕는 일환으로 인식돼 다소 번거롭더라도 농수축산물을 선호하곤 했다. 한 통계에 의하면 농축산물 명절 선물용은 약 6조원대로 추산된다. 그런데 김영란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될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직무관련성이 있는 사람이 일정액 이상의 선물을 받을 경우 과태료 부과 등 처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처벌기준이 되는 허용범위가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3만원이나 5만원 등으로 정해질 경우 치명적인 피해가 뻔하다.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이 5만원 이상이기 때문이다.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이 밝힌 지난 명절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판매된 농축산물 선물세트 가격의 경우 △과일의 50%가 5만원 이상 △한우의 93%가 10만원 이상이었다. 반면 10만원 이하는 7%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지침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구설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심리로 아예 선물시장 자체가 위축되는 것이다. 화훼산업의 쇠퇴가 이를 방증한다. 화훼산업은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췄지만 지난 2011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공무원행동강령에 ‘공무원이 승진·이동시 3만원 이상의 축하 화분을 주고받으면 처벌하겠다’고 규제하면서 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농어민들이 김영란법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는 꽃 시장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계치에 달한 농촌경제에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될 것이 자명하다.

심지어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도 국정감사장에서 “만약 김영란법이 적용될 경우 농축산물 시장이 매우 위축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민들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최근 전국 19세이상 성인 1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국민 2명 중 1명은 김영란법이 농축산물 적용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응답했다. 즉 김영란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농수축산물은 제외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내년 시행은 불가피하다. 다만 시행령이 문제다. 시행령을 확정하기 위해 정부가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의 결정만 남은 셈이다. 정부는 농촌의 현실을 외면하고 획일적인 잣대로 재단할 경우 농촌의 피폐가속은 자명하며 이는 더 큰 혼란과 사회적 비용부담을 불러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정청탁의 근절도 좋지만 더 이상 농어업인들이 피해를 입는 정책은 안된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에서 농수축산물을 제외하든지 이게 어렵다면 허용액수를 현실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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