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공지능(AI) 알파고를 상대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이세돌 9단을 기억할 것이다. 비록 세기의 대결은 끝났지만 우리는 심한 압박감과 부담감을 떨쳐내고 끈질기게 승부를 펼친 이 9단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더욱이 천재적인 바둑 실력 뒤에 숨겨진 부녀지간(父女之間)의 애틋한 광경이 수차례 걸쳐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이를 지켜본 사람들로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했다. 이 9단은 소문난 ‘딸바보’라고 알려져 있으며, 각종 포털 사이트 연관 검색어에 ‘이세돌 딸바보’가 등장할 정도로 평소 딸에 대한 사랑이 깊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 알파고와의 대결에서도 그의 곁에는 항상 딸 혜림 양이 있었다. 알파고와의 두 번째 대국을 위해 딸의 손을 꼭 잡고 대국장에 들어선 가 하면, 네 번째 대결에서 첫 승을 거둔 후 기자 회견이 끝나자마자 제일먼저 혜림 양을 찾는 등 딸을 향한 애정을 과시했다. 또 “딸바보냐?”는 언론의 질문에 “네. 딸이 해 달라는 건 뭐든지 다 해 주고 뭐든 다 받아 준다”라고 답할 정도였다. 이 9단의 딸 사랑은 새삼 자녀의 소중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과정에서 한 어머니가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면서도 다섯 살배기 아들을 살려낸 사연이 소개되면서 전 세계를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에 몸을 날려 자신의 아이를 지켰던 것이다. 이처럼 예로부터 위대한 모정에 관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서양과 동양, 과거와 현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우리네 부모님들은 그렇게 우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를 부정하는 인면수심 범죄가 잇따르면서 전국을 충격속에 몰아넣고 있다. 7살 딸이 주인집 가구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주부가 경찰에 검거되는가 하면,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4살배기 딸을 화장실 욕조에 가둬 숨지게 한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숨진 딸을 암매장한 30대 의붓 아버지도 경찰에 붙잡혔다.

또 지난달 경기도 부천에서는 16㎏에 불과한 7세 어린 아들을 2시간 넘게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해 냉장고에 장기간 보관해 온 30대 부모가 붙잡히기도 했다. 여기에다 계모와 친부가 아들을 모질게 학대해 숨지게 한 후 암매장한 ‘7살 원영이 사건’을 접하면서 “설마 부모가 자녀를 죽이려고 했겠는가”하는 부정적인 인식을 한 순간에 바꿔놓기도 했다. 이들 부모들의 경우 사이코패스도 아닌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보탤 말이 없게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부모가 가정 내에서 아동을 학대하는 사례는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조사한 ‘전국아동학대 현황’을 보면 전체 신고 된 건수 중 가해자가 부모의 경우는 79.8%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아동학대 발생 장소도 가정이 전체의 80.1%로 부모가 가정 내에서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다 부모에 대한 아동학대 범죄가 최근 5년 새 2배로 급증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 엄한 양형기준을 마련함과 동시에 예방교육 등 관련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더 이상 아동학대가 가정 내 문제가 아닌 국가적·사회적 문제라는 국민적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데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관련 대책을 만들려고 힘쓸 때만이 이같은 범죄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꽃봉오리도 피워보지 못한 채 부모의 학대 때문에 생을 마감해 버린 자녀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워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국가의 미래인 우리의 자녀들이 분명한 인격체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우리 사회가 지켜주는 근본이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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