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7(목) 17:57
|
고려 우왕 6년(1380년) 8월 전북 남원 인월면 인근의 황산. 이성계와 이두란 장군이 진포해전(鎭浦海戰)에서 패해 남원으로 진출하는 왜적 아지발도(阿只拔都)군을 막으러 진을 치고 기다렸다.
신궁 소리를 들었던 활 솜씨로 적을 물리칠 계획이었으나 하필 칠흑 같은 그믐밤이라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었다.
이때 ‘달이 뜨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고, 그믐밤인데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올라 이성계의 화살이 아지발도의 목을 꿰뚫었다.
1천여명의 군사로 10배나 많은 1만명의 왜구를 무찔렀다는 역사적인 황산대첩이다. 훗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무용담이 용비어천가의 ‘해동육용(海東六龍)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처럼 조금 과장됐겠지만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하고 있다.
인월은 ‘달을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이후 1577년(선조 10) 황산대첩을 기리기 위한 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는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344-1번지에 세워졌다. 사적 제104호다.
대첩비(大捷碑)는 높이 4.25m, 용각(龍刻)한 이수를 얹고 약 1.2m 높이의 귀부(龜趺) 위에 세워졌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의해 비(碑)가 폭파돼 파괴됐지만, 1957년 비문을 다시 새겨 본래의 좌대에 세우고, 1973년 보호각을 세웠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파괴돼 파편만 남은 것을 1977년에 복원했다.
아무튼 황산대첩은 이성계의 명성이 고려 땅에 울려 퍼지는 계기가 됐다. 이는 그가 후일 조선을 세우는 원동력이 된다. 황산대첩은 조선 건국의 시발점인 셈이다.
◇왜구 토벌 일대 전기 마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세기 후반, 극심하던 왜구의 노략질은 1376년 홍산(鴻山)에서 최영에게 크게 패한 뒤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나 1380년 8월 500여척의 대선단으로 진포(鎭浦: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금강 어귀)에 침입했다.
왜구는 타고 온 배를 밧줄로 단단히 묶어놓고 상륙해 충청·전라·경상 3도 연안의 주(州)·군(郡)을 약탈·방화·살육 등을 저질렀다. 이 때 시체가 산야를 덮고, 그들이 운반 중 흘린 쌀이 길 위에 한자나 깔릴 지경이었다. 조정에서는 나세를 상원수로, 최무선을 부원수로, 심덕부를 도원수로 해 왜적을 물리치도록 했다.
진포싸움은 최무선이 만든 신무기인 화포를 처음 사용해 묶어놓은 적의 함선을 모두 불태워 대승을 거둬 격렬했던 왜구의 만행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목숨을 구한 360여명의 적들은 옥주(沃州: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로 달아나 먼저 상륙한 적들과 합류했는데, 선박이 소실당하고 퇴로를 잃게 되자 상주·영동·옥주 등지로 진출해 약탈을 자행했다.
9월 왜구는 남원 운봉현(雲峰縣)을 방화하고, 인월역에 주둔하면서 장차 북상하겠다고 해 조정을 놀라게 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지리산과 해주 방면에서 왜구 토벌에 용맹을 떨친 이성계를 양광(楊廣)·전라·경상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에 임명하고, 변안열을 체찰사(體察使)에, 우인열·이원계·박임종·도길부·홍인계·임성미 등을 원수로 삼아 이성계를 도와 왜구대토벌작전에 나서게 했다.
양측은 운봉을 넘어 황산 서북의 정산봉(鼎山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적들이 험지에 자리잡고 버티자 죽음을 각오한 이성계가 산 위로 올라가 적을 맞아 싸웠다. 그러자 모든 군사가 총공격을 해 일대격전을 벌여 아지발도를 두목으로 한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
이때 전사한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6, 7일간이나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하며, 포획한 말이 1천600여필이고 병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고려사’ 열전 변안열(邊安烈)전에 의하면, 처음에는 적군이 아군보다 10배나 많았으나 겨우 70여명만이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도망했다고 한다.
황산대첩은 최영의 홍산대첩(鴻山大捷)과 함께 왜구 토벌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황산대첩 이후 왜구의 세력은 약화되고, 고려의 왜구대책은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됐다./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