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곳이 다르다.

물 가운데 터를 잡고 앉아
제 할 일을 다 한다.

평생을
물 앓는 소리에 묻혀 살면서
등을 내주는 재미에 푹 빠져
뼈마디가 무너지는 통증도 삭인다.

어쩌다
홍수를 만나는 날이면
숨 막히는 자맥질로 곤욕을 치르지만
그도 한때

여덟 살 개구쟁이 보폭으로
듬성듬성
물줄기의 허리에 뿌리내리고
길이 되어준다.

<이길옥 약력>
▲ ‘통일생활’ 신춘문예 시부 당선(74), ‘자유문예’ 외 5개 문예지 시 부문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광주시인협회 부회장
▲ 광주문학상, 광주 시문학상, 광주예총 문화예술상, 청암문학상 대상 수상
▲ 저서 : ‘하늘에서 온 편지’, ‘엄니 아리랑’ 외 다수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평설-
이길옥 님의 시 ‘디딤돌’에서의 시적 화자는 새로운 발견을 캐내고 있다. 디딤돌이 노는 곳이 남다르다고 해석한다. 맞다. 물 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니 그렇다. 그러면서도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 디딤돌은 제 몸을 냇가에 풀어놓고 사람들이 건널 수 있도록 자신의 등을 내준다. 바람을 건네주고 산그림자를 건네주고 별빛도 안아 건네준다. ‘평생을/물 앓는 소리에 묻혀 살면서’도 묵묵히 하늘까지 안아 건네준다. 이 디딤돌처럼 우리도 누군가가 어려움을 이겨내며 건너갈 수 있도록 자신의 등을 내준 적이 있었는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러면서 자식의 디딤돌이 기꺼이 되어 준 부모님을 떠올리며 숙연해진다. 디딤돌은 세파와 같은 물 앓는 소리 들어야 하고, 등도 내줘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고난을 즐기고 있다. 뼈마디가 무너지는 통증을 삭이면서, 운명을 받아들인다. 물론 홍수 만나 숨 막히는 자맥질로 곤욕을 치르는 역경의 때도 겪어야 하지만, 그 정도는 삶의 한 켠일 뿐이다. 놀라운 건 여덟 살 개구쟁이 보폭으로 듬성듬성 물줄기의 허리에 뿌리 내리고 길이 되어 주는 방향성이다. 해석의 색다름, 낯설게 하기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어, 빛나는 표현이 우리 독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평범한 디딤돌, 징검다리가 새로운 해석을 통해 아름답고 우아하게 태어나, 독자의 가슴에 살포시 안기고 있다. 이게 바로 시가 아닐까. 오늘 이 시를 만난 시의 특질과 독자들은 무척 기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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