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봄날은 5월이 돼야 봄스럽다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슈만도 5월의 ‘찰나의 봄’을 그리 아름답게 찬양했나보다.

계절상 한국의 늦봄이라 할 수 있는 5월이 되면 거리에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이 울려퍼진다.

봄날의 자연과 사랑을 노래하는 성악가의 미성은 움츠렸던 우리의 마음을 녹이고 사랑에 대한 도전에 나서게 한다.

‘Im wunder Schonen monat Mai(아름다운 오월에)’의 가사처럼 독일의 봄은 특별하다. 표정이 다채롭지 못한 독일인을 미소 짓게 하며 그들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옥상에 찬란한 햇살에 몸을 맡기는 누드 퍼포먼스까지 유도한다. 독일에서 봄은 따사로움과 더불어 활기를 불어넣는다.

오랫동안 독일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했던 메조소프라노 김진희 선생과 함께 독일의 봄과 함께했던 추억을 나눠보려 한다.

김진희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 살아왔던 생의 시간에서 무척 큰 영향을 준 책이 하나 있었으며 그 책은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한다. 전혜린은 그녀에게 독일로의 로망을 심어줬고 닿지 못한 세상에 대한 동경을 만들었다.

1994년 봄, 음악에 대한 갈급한 마음과 전혜린이 그토록 향유하고자 했던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김진희는 독일 뮌헨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독일의 봄을 이야기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날씨였다. 한국의 봄날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사실 독일의 날씨는 참으로 날 힘들게 했다. 하루에도 수시로 바뀌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천둥이 치다가는 금세 볕이 뜨거워지고, 그러다가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봄 날씨는 초겨울처럼 나의 코끝을 시리게 만들었다. 공기는 싸늘하고 차가웠다.”

김진희가 처음 만났던 봄은 이렇듯 섭섭한 날들이었나보다. 따사로움과 초록이 대지를 뚫고 고개를 내미는 우리의 봄과 달리 늦게 고개를 드는 독일의 짧은 봄은 그녀에게는 아쉬운 찰나였던가 보다. 하지만 독일인들에게는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 같다. 그래서 찰나의 봄을 담기 위해 독일의 문호와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 안에서 그리 아름답게 찬미했나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유난히 봄을 찬양했다.

‘오월의 노래’, ‘들장미’ 등 그는 계절의 여왕 5월을 너무 사랑했다. 찬란한 햇빛, 종달새의 지저귐, 대지에 싹을 틔운 오색의 꽃들을 바라보며 얻은 영감을 통해 자신의 역작을 남겼다.

브레멘 오월의 들녘 <독일관광청 제공>

베토벤에게도 오월은 특별했다. 젊은 나이 사랑을 하고 그 감동을 가곡에 담았던 그는 ‘아델라이데’, ‘오월의 노래’에 자신의 사랑을 담았다. 예술가들에게는 열정과 영감을 주는 독일의 오월은 상반되는 겨울이 있어서 그 자태가 화려하듯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인터뷰를 함께 한 김진희에게도 각고의 노력과 도전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그녀가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김진희가 말하는 흐린 봄 때문에 지금 맞이하는 우리의 봄이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하게 보인다.

그녀가 살았던 독일은 크고 작은 축제가 많다. 자그마한 동네 축제에서부터 세계적인 큰 축제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돔축제가 열리는 거리 풍경 <독일 관광청 제공>

독일의 축제하면 맥주 축제인 뮌헨의 ‘옥토버 페스티벌’만 기억하지만, 훗날 그녀가 귀국한 날까지 살았던 함부르크와 브레멘에서도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많다. 특히 함부르크에서는 매년 3월에서 4월까지 약 한 달간 열리는 함부르크 ‘DOM’이 유명하다 전한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우리나라 놀이동산 같은 축제이고 먹을거리와 놀이기구가 많아 보고 먹고 즐길 수 있는 축제라고 말한다.

그녀가 유학 생활을 한 브레멘도 함부르크 ‘DOM’처럼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축제가 열렸다.

부활절에 열리는 축제인데, 여기는 꽤 수준 높은 민속품이나 공예품들을 볼 수 있다고 전한다.

브레멘 음악대 동상 <독일 관광청 제공>

브레멘 하면 많은 사람은 그림 형제가 쓴 동화소설 ‘브레멘 음악대’를 떠올릴 것이다.

세계인들이 브레멘에 와서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바로 ‘브레멘 음악대’ 동상이라는데 구시청사를 돌아 성모 교회 앞에서 네 마리의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브레멘의 야경

항상 관광객들의 인기 촬영지로 북적이는 이곳에서는 가끔 한국어를 들을 수 있어 그녀에게 고국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곳이라 전했다.

유럽은 지역마다, 작게는 동네마다 봄과 가을에 많은 축제를 개최한다. 봄이 되면 매서운 겨울바람을 피해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넣기 위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축제에는 항상 춤이 등장하고, 술이 등장하고, 이곳저곳엔 거리 음식과 더불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퍼포먼스가 함께 한다.

김진희는 귀국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 가면서 독일에서의 12년의 세월이 희미해져 간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독일의 유학 생활은 힘겨움만이 생각나는데 지금 그때의 기억을 되새겨 보면 독일에서의 지냈던 시간이 추억으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이제 그곳에 돌아간다면 아마 독일의 봄이 달리 보일 것 같다고 전하며 전혜린의 자유가 서린 뮌헨의 대학가와 함부르크의 ‘DOM’ 축제의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다시 맛보고 싶다고 전했다.

<최철·조선대 문화학과 초빙 교수>

벚꽃이 휘날리고 거리의 활기참이 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 봄을 만날 준비가 돼있지 못하는가 보다. 오랫동안 우리를 상실의 나락으로 이끌었던 팬데믹 시대에 계절은 봄이지만 많은 이들은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동절기를 아직도 지나가는 듯하다.

메조소프라노 김진희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팬데믹 시대 우리의 지금 어려움이 찬란한 봄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봄날의 따사로움처럼 우리들의 마음에도 감동과 행복이 가득 찰 날 이 꼭 오지 않을까? 고대했던 우리 모두의 봄날을 기대해본다.


TIP 메조소프라노 김진희는…

조선대학교 음악교육과를 졸업하고 도이한 그녀는 브레멘 국립음악대학을 졸업하고 함부르크 콘서바토리움을 수료했다.

국내·외의 오페라 무대를 비롯해 다양한 무대에서 드라마틱한 음성과 깊이 있는 곡 해석, 그리고 세련된 무대 매너로 최고의 디바로 조명을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꾸준히 후학을 양성해왔으며 전문 연주자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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