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로부터)박태규 作 ‘우리가 꿈꾸는 세상’ , 김우성 作 ‘봉기’ , 오치근 作 ‘정의와 생명을 지키는 수호신 해치’

살다 보면 어느 만큼 걸어왔는지 뒤돌아 살피고 싶어질 때가 있다. 기억을 되짚으면 숨고 싶을 만큼 창피한 기억에 얼굴이 발개지기도 혹은 기분 좋은 느낌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며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교차해 갈 것이다.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올바르게 걷고 있는지 지난 길은 잘 걸어왔는지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본 다음 그러고선 그 길을 정비해 다시 걸으면 될 일이다.

이럴 때야말로 필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할줄 알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리프레쉬 해가면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도 경험해봐서 알고 있을 테지만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을 일이다.

2024년 다시 오월이다. 우리의 오월은 얼마만큼 지나왔나 그리고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나?

동학 130주년을 맞은 올해 오월은 유난히 더 시린 듯하다. 가장 큰 이유는 긴 시간이 지난 후임에도 여전히 대동세상은 오지 않은 듯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전한 역사 왜곡과 정권에 따라 춤추는 위상을 비롯해 그 외에도 산재한 여러 문제들이 여전한 골칫덩이로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대동세상’이란 무엇인가? 그곳은 어쩌면 꿈속에서나 볼 법한 상상 속의 ‘유토피아’일 지도 모른다. 오치근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해치’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정의와 생명을 지키는 수호신 해치’라는 제목의 작품 속에 이글거리는 불과 화살 더미 속에서도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기개를 지키는 해치의 모습은 자체만으로도 멋져 보인다.

온몸을 덮은 비늘과 뿔이 달린 머리, 마치 용처럼 매섭게 생긴 얼굴,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그리고 불을 내뿜는 겨드랑이의 날개까지 실재에선 볼 수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인 해치의 생김새는 말 그대로 대단하다.

또한, 예로부터 화재와 재앙을 막는 상서로운 동물이었고, 특히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지키는 전설 속의 동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 어둠을 밝히고 정의를 지키던 해치의 머리에 난 뿔은 ‘정의의 뿔’이다. 나쁜 짓을 하면 날카로운 뿔로 들이받아 벌을 줬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해치라는 이름조차도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을 환히 밝히듯 정의를 수호하라는 뜻이 담긴 ‘해님이 보낸 벼슬아치’ 즉 ‘해의 신’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전설의 동물 해치가 사라진 현재, 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좀 더 정의롭고 평등하고 평화롭게 가꿔 줄 해치를 생각하며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해치가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까지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모두가 하나되는 대동세상과 연결되는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은 세상 만물이 평등하고 존엄하길 바랐던 동학 정신과 서로 통한다.

또한 거대 국가폭력에 맞서 처음으로 행동했던 민초들의 모습이 담긴 동학의 사상에는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에 대한 염원이 그대로 녹아있다.

다시 오월을 맞은 우리가 잊지 말고 이어가야 할 것은 바로 이 ‘대동정신의 계승’인 것이다.

대동정신은 민주주의의 시작점이자 뒤이어 올 모든 혁명의 시발점인 동학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오월이 마주하고자 했던 대동세계를 이루는 근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평등을 바랐던 동학의 정신으로 뜻을 모아 보국안민에 앞장섰던 그들의 꿈은 비록 1년 만에 끝이 났지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란 그들의 정신은 항일운동과 민주화 물결로 이어지며 나라의 기틀이 됐다.

당시 농민과 민초들의 봉기는 실제 어떠했을까? 김우성 작가의 작품 ‘봉기’ 속에서 마치 그날의 현장처럼 생생히 묘사된 그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화면 왼쪽에서부터 마주할 수 있는 노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처참한 몰골의 민초들의 모습은 눈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굶주림과 병에 허덕이다 죽은 손자를 안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과 멍석에 말린 아버지의 주검을 슬퍼하는 딸의 모습, 쌀을 얻기 위해 초라한 행색으로 줄을 선 서민들과 바가지를 들고 선 어린아이의 모습은 곤궁하던 당시를 짐작하게 해준다.

화면 오른쪽에 선 이는 전봉준은 아니나 그 뒤를 따르던 수많은 인민군 대장 중 한 명의 모습이다. 그 옆에는 분홍색 한복을 입고 그의 손을 잡은 딸과 그 옆에 아이를 업고 뒤 돌아 있는 부인의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 뒤로는 대장과 함께 농민군에 합류하기 위해 총과 낫을 손에 들고서 말을 정비하고 깃발을 높이든 농민군의 모습이 구름 떼와 같이 섰다. 채비를 하고 길을 떠나기 전 남을 사람들에게 여분의 쌀을 나눠주며 노비 문서를 모두 불태웠으니 앞으로 펼쳐질 세상에 대한 언급을 하며 투지를 다지고 있다.

이런 혁명들을 통해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고 민주주의가 더욱 탄탄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13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동학에서 오월로’ 그리고 전국 각지의 항쟁에 거점과 거점을 연결하고, 나아가 전 세계까지 연대의 범위를 확대해야 하는 것!

우리가 꿈꾸는 대동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때이다. 진실을 담은 오월 불꽃과 녹두장군을 표현해놓은 박태규 작가의 작품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오월은, 그리고 우리의 대동세상은 이제 진실 가득 담은 꿈과 희망을 안고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바로 그 시작은 하나의 민들레 홀씨가 거대한 뭉치를 이루듯 작은 나로부터의 시작일 것이며, 이 작은 불씨가 결국엔 거대한 불길이 되어 우리 앞에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울렁 더울렁 함께 사는 세상이 바로 그 대동세상이 우리 앞에 반드시 다가오리라 확신한다.
<이현남·전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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