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형태-생성(生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거기, 구름이 있었다. 말랑한 솜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산처럼 무거운 침묵처럼.

우리는 자주 구름을 ‘본다’고 말하지만, 구름은 사실 떠 있는 존재다. 공기보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하늘에 머무는 이 기이한 현상은 수증기와 얼음, 투명한 것들의 겹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투명함이 겹치고 쌓이면 마침내 ‘보이는 것’이 된다. 회화가 그렇고, 감정이 그러하며, 삶 또한 그렇다.

구름은 응결된 기억이다. 보이지 않던 감정들이 서늘한 기운을 만나 응축되고, 비로소 형태를 드러낸다. 뜨거웠던 마음이 식으며 가라앉고, 스미고, 뭉치며 마침내 떠오른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마음의 색이고, 내가 덧칠해 온 하늘의 층이다. 그 층 위에 나는 나의 감정을 쌓아간다.

지면 가까이 내려앉으면 우리는 그것을 안개라 부르고, 멀리 떠 있으면 구름이라 부른다. 같은 입자지만, 위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감정도 다르지 않다. 같은 감정이라도 서 있는 자리, 머무는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다. 내 작업도 그러했다. 슬픔을 마주할 때,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색의 흔적을 쫓기도 하고, 땅의 물기를 어루만지며 내 안의 눅진한 감정을 꺼내기도 했다.

공기덩이가 상승하고, 팽창하고, 식어가면서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듯, 감정도 때로는 온도가 내려가야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 뜨거울수록 드러나지 않고, 차가워질수록 응결되는 법. 이것은 단순한 열역학이 아니라, 마음의 법칙이다. 나는 식어가는 마음을 사랑한다. 그 식음 속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색을 기다린다.

적운은 내가 웃을 때의 표정, 층운은 고요한 슬픔의 결. 권운은 언젠가 스쳐간 희망의 기억이고, 난층운은 울음을 꾹 삼킨 채 살아가는 이들의 어깨다.

구름은 하늘에 그린 자화상이자, 내 마음의 풍경이다. 나는 오늘도 그 구름을 따라 내 안의 안개를 그리고, 마음의 색을 덧입힌다. 응결의 순간을 기다리며, 그렇게 또 한 점의 구름이 되어간다. <대인동에서, 화가 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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