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통신사 사용자들의 유심 정보가 대규모로 털렸다. 분노한 이용자들 앞에서 통신사 대표는 사과했고, 해지 위약금을 전부 면제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구인구직 사이트의 이력서, 소셜미디어 가입 정보가 한꺼번에 새어 나가는 일도 낯설지 않다. 현대의 개인은 자신의 데이터를 넘겨주고 자발적으로 감시당하며, 보이스 피싱·스팸 전화·정보 도용이라는 혼란 속을 헤엄치고 있다.
이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 미국 프로퍼블리카 기자 매켄지 펑크의 ‘세상을 데이터베이스에 가둔 남자’(다산초당刊·이영래 옮김)다. 이 책은 빅데이터 시대의 초감시사회를 설계한 인물인 ‘행크 애셔’의 흔적을 따라간다.

애셔는 사람들의 과거 기록을 결합·분석해 ‘위험성’을 산출하는 프로그램으로 억만장자가 됐다. 그 시스템은 범죄자와 실종 아동을 찾아냈고, 9·11 당시에는 테러리스트들을 특정해 FBI 등 정부 기관의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특정 의도를 지닌 권력의 손에 들어가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선거권을 박탈해 선거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은 지금도 FBI, CIA, ‘포천’ 500대 기업의 80퍼센트, 세계 10대 은행 중 7곳, 미국 약 1만8천여 법 집행기관의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 책은 ‘데이터 융합의 아버지’, ‘데이터의 마법사’로 불리지만 정작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애셔’에 주목한다. ‘타임’에 실린 애셔의 부고 기사에서 출발해 도장공·마약 밀수업자에서 천재 프로그래머, 억만장자 사업가로 변신해 가는 그의 궤적을 소설처럼 따라간다.

정부 차량 등록 데이터에서 ‘금맥’을 발견한 순간부터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 불안정한 삶, 그리고 그가 만든 데이터 왕국이 산업과 사회를 재편해 온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이야기는 메타·팔란티어 등 IT 기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데이터를 받아들인 정부 기관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통제하게 됐는지까지 세세하게 비춘다.

이 경고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SNS 게시글 하나가 범죄 혐의의 단서가 되고, 개인정보 유출이 사이버 스토킹으로 이어진다. 보이스 피싱과 스팸은 일상어가 됐다.

결국 책은 한 논쟁적 인물의 쇼 같은 삶을 통해 묻는다. 데이터 산업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떻게 커졌으며 지금 어디로 향하는가. 데이터가 바꿔 놓은 우리의 일상은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윤리적 문제가 반복됐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감수자로 참여한 마인드 마이너이자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데이터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데이터에는 수집하는 사람의 관점, 분석하는 사람의 가치관, 활용하는 사람의 목적이 모두 스며들어 있다”며 “행크 애셔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편향’이 어떻게 시스템이 되고, 시스템은 어떻게 사회가 되는지 생생하게 기록한다”고 밝혔다./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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