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선 지역특집부 국장

민족 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도심 곳곳이 다시 불법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았다.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얼굴, 이름, 덕담이 담긴 현수막이 주요 교차로와 전신주, 심지어 인도변 가로수에까지 빽빽하게 걸렸다.

시민들은 매년 반복되는 같은 풍경에 한숨을 쉰다. “추석만 되면 늘 저렇지”라는 체념 섞인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보기 싫다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불법 현수막은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사고 위험을 높이고,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한다.

무엇보다 공정한 정치 경쟁을 훼손하는 구조적 문제가 남는다. 결국 돈과 조직을 가진 사람만이 도심 곳곳을 ‘점령’할 수 있게 되면서, 정치의 장은 불평등하게 기울어진다. 당장의 눈도장을 위해 내일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 신뢰를 갉아먹는 셈이다. 추석은 본래 공동체를 돌아보고, 이웃과 가족의 정을 나누는 명절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불법 현수막은 그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웃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고, 공동체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가 반복되는 사회에서 과연 ‘공동체 정신’을 말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불법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속 기관은 ‘일시적인 명절 현상’이라며 사실상 눈을 감는다. 단속은 미약하고 철거는 뒷북이다. 그 사이 정치인들은 손쉽게 얼굴을 알리고, 시민들은 불편과 위험을 감수한다. 이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불법 현수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정치인들은 불법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도 시민 앞에서는 당당할 수 있는가. 그 근본에는 ‘오늘만 잘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가 자리한다. 하지만 오늘 편하자고 불법을 용인하는 순간, 내일은 더 큰 혼탁과 불신으로 돌아온다. 작은 무질서가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편안함이 내일의 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시민의 공간을 존중하고, 법의 울타리를 지키는 기본에서 진정한 정치가 시작된다. 불법 현수막 하나 걸지 않는 용기,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배려가 결국 가장 큰 정치적 신뢰로 돌아올 것이다.

추석은 본래 ‘함께’의 가치를 확인하는 명절이다. 정작 함께 살아가는 시민의 공간을 불법으로 점령하면서 덕담을 내건 현수막은 공허하다. 오늘만 편하자는 발상이 아니라, 내일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지금 불법을 멈추는 결단이 필요하다. 오늘의 편리함을 위해 미래를 희생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추석의 의미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지혜로운 자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서 찾고, 어리석은 자는 모든 것을 남에게서 찾는다. 기득권은 상대가 변하길 바라고, 혁신은 자기가 변하길 바란다. 혁신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오늘 편하자고 내일을 희생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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