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作 ‘군상’

이우환作 ‘Dialogue’

장 드고텍스作 ‘무제’

검정은 단순한 색이 아니다. 어둠과 빛, 비움과 충만이 공존하는 세계의 언어이자 동서양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검정의 미학을 주제로, 동아시아 수묵 남종화와 1950년대 서구 블랙 회화를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교차 조망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오는 12월14일까지 전남도립미술관이 선보이는 국제전시 ‘BLACK&BLACK’이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4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20명이 참여해 회화와 도자, 영상 설치 등 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도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프랑스의 파리시립 세르누치 아시아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센터, 아르퉁 재단 등 유수 기관으로부터 작품을 대여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기관의 협력으로 전시의 스펙트럼을 한층 넓혔다.

전시는 ‘동서양 블랙의 미학적 차이와 조응’이라는 주제 아래, 같은 검정을 다루더라도 문화적 배경과 철학적 인식의 차이에 따라 다른 미적 의미가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양 수묵은 여백과 비움을 통해 기(氣)의 흐름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서구 현대미술은 블랙의 물질성과 평면성을 활용해 새로운 추상 언어를 탐구했다. 결국 두 세계에서 블랙은 결핍이 아니라 생성의 원천이며, 우주와 생명의 질서를 담는 매개로 기능해왔다.

1950년대 파리 화단은 전후 국제미술의 중심지로, 다양한 문화와 사조가 교차하던 공간이었다.

중국 출신 자오우키(Zao Wou-Ki)는 서예적 필치와 산수화적 공간 개념을 서구적 색채와 결합해 서정적 추상의 세계를 열었고, 그의 작업은 아시아 작가들도 세계 미술사에서 주체적 위치를 점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같은 시기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한스 아르퉁(Hans Hartung), 장 드고텍스(Jean Degottex) 등 서구 작가들은 격렬한 제스처와 물질성을 통해 블랙의 조형적 가능성을 확장했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 작가들의 등장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응노는 파리에서 활동하며 서예적 전통을 해체하고 현대 추상 회화로 확장했으며, 이우환은 ‘관계항(Relatum)’ 개념을 통해 서구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강소 역시 먹과 붓의 흔적을 통해 동양적 공간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전시는 이처럼 동서양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며, 예술의 경계를 넘어선 블랙의 언어를 탐구한다. 서구 작가로는 술라주, 아르퉁, 드고텍스, 로버트 마더웰, 자오우키, 한국 작가로는 이우환, 이응노, 이강소가 참여한다.

또한 조선시대 공재 윤두서에서 시작해 허련, 허백련, 허건으로 이어진 남도 수묵의 전통이 함께 조명된다. 현대 수묵의 맥을 잇는 김호득, 정광희, 최종섭, 송필용, 박종갑, 설박, 황인기, 박정선 등 남도 기반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이들은 남종화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수묵을 동시대적 언어로 확장하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미학적 지평을 펼친다.

전시는 전후 파리 화단을 중심으로 이뤄진 문화적 교류와 예술적 상호작용을 재조명하면서도, 한국과 아시아 작가들이 서구 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한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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