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 중인 박자현 개인전 전경.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이 화폭에 담겼다.

박자현 작가 개인전 ‘성스러운 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노래(Sacred Poetry: The Unseen)’가 오는 30일까지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관장 정연주)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점묘 기법으로 인물의 표정과 시선, 주름과 숨결까지 세밀하게 포착한 회화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작가에게 인물을 그리는 일은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다. 그는 보편적 인간의 고통과 정서를 시간의 흔적 속에 응축해왔다.

작가는 주로 20-30대 여성의 초상을 그려오며 불안과 막막함, 생존의 감각을 표현해왔다. 최근에는 해리기억장애를 앓는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며 작업의 방향이 ‘고통’이라는 주제로 수렴됐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쉼 없이 일하던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며, 내가 마주한 감정의 근원이 결국 그녀의 삶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작가가 집요한 시선으로 그려낸 인물의 얼굴들은 버팀과 인내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존재 자체가 하나의 ‘성스러운 시’로 읽힌다.

박자현의 관심은 개인의 기억에서 사회의 주변부로 확장됐다. 그는 성매매 집결지나 쪽방촌과 같은 공간에 주목하며 누군가의 어머니, 언니가 가족을 위해 살아내야 했던 현실의 자리를 기록한다. 허름한 벽과 문틈, 낡은 풍경을 통해 도시의 재개발과 함께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화면 위로 불러내고, 지워진 장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묵묵히 증언한다.

전시 제목은 차학경의 ‘딕테’ 속 ‘성시’(聖詩, Polymnia)에서 따왔다. 작가는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삶을 감당해온 존재들에 대한 헌사이자 구원의 노래를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현주 관장은 “이번 전시는 박자현이 오랜 시간 쌓아온 회화적 밀도와 진심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며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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