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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고?” “네! 하늘이 미쳤어요.”
쉬는 시간,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 나가 하늘바라기를 하다 말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늘이 미쳤다’는 말도 그냥 가만히 내뱉는 것이 아니었다. 파란 하늘을 마주한 느낌을 가장 멋진 말로 표현해 냈다는 듯, 아이의 표정과 몸짓이 의기양양이다.
“그렇구나! 그런데 하늘이 어떻게 미쳤지?” “그냥요….” “그냥?” “네! 파래요, 엄청 파래요.” “으음, 그렇구나. 하늘이 엄청 파랗구나.” “하늘이 바다 같아요. 출렁이는 파란 바다!” “파란색 물감으로 쓱쓱 색칠해 놓은 그림 같아요!” “파란 하늘을 보니까 마음도 파래지는 것 같아요.” “야, 마음이 어떻게 파라냐?” “마음에도 색깔이 있다고 하셨잖아.” “맞아. 나도 오늘은 파란 마음! 기분이 좋아!” “나는 고양이 마음이다, 야옹!” “나는 강아지, 멍멍!” “하하하!” “까르르르!”
‘미쳤어요!’라는 말에 건넨 ‘어떻게?’는 아이들의 말문을 열어주었다. ‘그냥요’가 ‘엄청 파래요’가 되고, 출렁이는 바다가 되고, 파란색 물감으로 쓱쓱 색칠해 놓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가득 파란 하늘이 스며들어 왁자지껄, 교실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튀어 올랐다.
“소름” “헐~” “대박!”
텔레비전을 보며 마음이 씁쓸해질 때가 있다. 맛에 대한 평가도, 음악에 대한 느낌도, 그림이나 풍경을 마주한 감상도 다르지 않다. 도대체 뭐가 미쳤고, 또 무엇이 소름이란 말인지. 말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건지 커다란 자막으로까지 띄우는 걸 보면 가슴이 더 답답하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젊은 세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표현 역시 언어의 생명력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는 말들이 지나치게 단순해지고 획일화되고 있다. 달콤한지, 고소한지, 담백한지, 새콤한지.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 떠오르는 맛인지. 추억 속, 함께 했던 사람이 떠올라 마음이 달콤해지는 음악인지. 각자의 추억과 생각과 느낌을 담아내야 할 말들이, 어느 사이 ‘소름’이 되고 ‘헐~’ 이 되고 ‘대박’이 되었다.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는 말에, ‘어떻게 위로를 심심하게 드리느냐.’ 고 반문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심심하다’는 말의 한 가지 뜻만 알고 있으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심심하다’에는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다’는 뜻의 ‘심심(甚深)하다’도 있다. ‘심심한 위로’에서의 심심은 지루하거나 재미없다는 뜻이 아니라 깊고 간절한 위로라는 뜻이다.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우리 사회 문해력에 대한 경고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능력만이 아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며, 다른 사람의 말과 글에 담긴 의미까지 헤아리는 힘이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생각의 근육’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반드시 품어야 할 생존이자 자립의 힘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한계는 내 세상의 한계다”라고 말했듯, 다양한 말을 구사하는 만큼 생각의 폭도 넓어진다. 풍부한 언어는 아이들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더 깊고 넓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든든한 날개가 된다.
“으음, 그렇구나! 어떻게?”
문해력은 하루아침에 벼락치기로 만들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문해력의 시작은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문제집이 아니라, 천천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 한 문장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무엇보다 진득하게 앉아 책을 읽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기다려주는 따스한 눈길이 절실한 계절,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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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5 (목) 20: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