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3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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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뺄셈과 아이의 나눗셈
이계양
‘품자주자 시민들’ 공동대표
前 광주 YMCA 이사장

  • 입력날짜 : 2019. 11.17. 17:44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의 취임사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부분이다. 아마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공감한 대목일 것이다. 그리고 조국 국면을 지나면서 더욱 절실하게 상기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는 이전의 정부나 세상에서 평등과 공정, 정의가 심각하게 훼손,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법은 사람들의 사이에서 생겨나는 여러 문제를 공평하게 조율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법은 지위의 고하나 재산이나 권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는 질서가 유지되고, 개인은 존엄성을 인정받게 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게 공정하게’라는 법치의 논리는 1/n이라는 기계적인 셈법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는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더 많고 큰 것’을 ‘더 쉽게 빨리’ 얻으려고 한다. 손쉬운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덧셈과 곱셈을 사용하다 보니 평등, 공정, 정의가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엔 1/n이라는 법적 평등, 공정, 정의밖에 없을까. 이 문제는 현대사회 속에서 항시 도전을 받게 된다. 자본의 끝없는 이기적 욕망 앞에서 ‘아무도 똑같이 공평하고 공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한국의 가정에는 어머니라는 위대한 존재가 있다. 나눔을 할 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계산법으로는 온 가족이 1/n로 하는 것이 공정하고 공평하다. 특히 귀하고 값진 것을 가족들이 나눌 때 어머니는 슬그머니 자기 몫을 제외시키거나 최소화한다. 음식의 경우 갑자기 배가 아프다거나 입맛이 없다거나 하는 등의 핑계를 대며 제 몫을 가족들 앞에 미룬다. 자발적 손해를 실행하면서 가족들의 입과 마음을 만족시키면서 스스로도 만족스러워 한다. 오히려 가족들의 만족으로 인해 자신은 더 크게 만족감을 느낀다. 또 그 때문에 다른 가족구성원의 몫이 극대화되어 더 크게 만족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 가족’이기에 뺄셈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어머니 스스로 뺄셈을 선택함으로 공동체의 공정함, 공평함은 기울어진 채로 끈끈하게 유지될 수 있다. 만약 어머니도 자녀들과 똑같이 1/n을 제 몫으로 받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일견 합리적이고 공평하니 누구도 어머니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어머니의 마음에 아무런 스스럼이 없을까. 또 자녀들의 마음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까. 이런 일이 지속되어 쌓여간다면 가족공동체의 유대감은 어떻게 될까. 변함없이 서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법적인 평등, 공정, 정의로는 타당하지만 가족 공동체의 자치(自治)로는 뭔가 미흡함이 느껴진다.

또 성경에 보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인 기적의 이야기가 있다. 만약 그 물고기와 보리떡을 가진 아이가 자기 것을 내놓지 않았다면 한 사람의 배만 채웠을 것이다. 아이가 자기의 몫을 여러 사람과 나눔으로써 수많은 무리들의 배를 채우고도 남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자발적인 나눔이 모두의 배를 만족시켜주는 새로운 차원의 평등, 공정, 정의를 이루게 한 것이다.

가족 중에서 어머니의 뺄셈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 중에서 아이의 나눗셈이 ‘우리’라는 공동체를 모두 만족하게 해 주는 정의요 공정함의 요소가 됨을 본다.

우리는 오늘도 평등, 공정, 정의를 따지는 법치의 사회 속에서 생활하면서, 한편으로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덧셈과 곱셈으로 법치를 왜곡하려는 모순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1/n의 평등, 공정, 정의에 우리는 마지못해 만족하거나 할 수 없이 만족할 수밖에 없다. 아니 1/n의 평등, 공정, 정의라도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꿈꾸는 덜 성숙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정녕 꿈꿀 일은 덧셈과 곱셈의 법치가 아니라 뺄셈과 나눗셈의 자치가 아닐까. 어머니의 뺄셈과 아이의 나눗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자치공동체의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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